삼류극장에서의 한때 1
배용제
거추장스러운 날들이 주머니 속에서 뒹굴던 한때,
그때 나 삼류극장의 어둑한 통로를 걸어
환각의 세계로 잠입했었네
내게 요구하는 주머니 속의 시간들을 서슴없이 지불하면서,
아무리 소비해도 온천수처럼 솟아 뜨거워지던
뜨거워질 뿐 흘러갈 도랑 하나 찾을 수 없던
가혹한 청춘을 향해 가래침을 뱉어내었네
쓴 기억의 껍질을 벗기고 질겅질겅 껌을 씹으면
목구멍으로 흡수되는 어둠의 단맛,
삼류극장 안에서 나는 몇 방울의 오르가즘이 되기 위해 살과 피를 함부로 도려내었네
온갖 문구들이 눈빛에 선명하게 박히고
그 강렬한 추파에 응답하는 내 젊음의 한때,
검은 장막 안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갔네
다만 천국으로 향하는 비밀통로를 열어주는
한 줄기 긴 빛과 신음 소리 앞에서 마른침을 삼켰네
그것은 육체의 법칙,
무릎과 무릎 사이에 엎드려
깊은 밤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네
뻐꾸기가 밤에 우는 이유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난
날마다 허물벗는 꽃뱀의 매끄러운 살결을 더듬으며
사랑의 방식에 터득했네
어둠의 성역에서 타락과 포옹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신이 감춰둔 또 하나의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고,
시간은 단단한 벽으로 밀봉된 바깥 세상에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곤 했지만,
삼류극장의 어둠에 그을린 수많은 애욕 포스터로
포장된 나는 평화로웠네
풍요로운 연인들과 함께 아름다운 도피 중이었네
그 곳에 오래도록 머물기 위해
책이나 옷을 팔고, 많은 물건들과 청춘 따위 같은
그 동안 가졌던 것들을 아낌없이 바쳤네
내 시계 위에 검은 비늘이 덮여 있는 동안,
고속주행 되는 세월에게 감동의 기립박수를 퍼부었네
어느 날 모퉁이에서 아주 늙어 버린 내가 발견되길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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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제 전북 정읍 출생.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삼류극장에서의 한때>, <이 달콤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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