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좋 은 시 와 글

김미승 / 김밥강론

by 솔 체 2018. 1. 2.

김밥강론

김미승




펼치면 먹먹한 먹지 같은 하루라구요?

웬걸요, 그 위에 우북우북 쌓이는 생각의 알갱일랑

쫘악 펴버리세요, 이미 적당히 간 들어간

꿈들, 얌전히 엎드리는 굴욕도 아름답잖아요

참, 흑백의 논리는 설명이 안되겠네요

좀더 선명한 알리바이가 필요하세요?

들끓는 세상에 풀죽은 시금치, 그 퍼렇던 객기

기억하시죠? 본색 수상한 단무지와 등 기대는 거

보여요? 제 성질 못 버리는 얼굴 불콰한 햄이랑

얄팍한 변신이 뛰어난 계란의 찰떡궁합,

얼마나 힘차게 끌어당기고 있는지

그리고 다들 함께 이러구러 둥글게 말리는

저 속 꽉 찬 생 말이에요,

날 잘 벼린 알량한 이성의 칼날 쓱쓱

가슴께를 베고 가면 어떡하냐구요?

그야 산다는 거 무늬 하나 만들어가는 일

어디를 베어낸들 선명한 알리바이라면야

무슨 대순가요, 모쪼록 요약되어지는 세상에서

뼈째 썰리는 황홀한 고통쯤 감내하셔야죠

잘 생각해보시도록.




―1999 겨울, 〈작가세계〉 등단작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