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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는 비
그리움 이라는

마음의 서랍

by 솔 체 2018. 4. 12.
    마음의 서랍 / 강연호 이제는 ...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자신했던 아픈 기억들 바늘처럼 찔러올 때 무수히 찔리면서 바늘귀에 매인 실오라기 따라가면 보인다 입술 다문 마음의 서랍 허나 지금까지 엎지르고 퍼담은 세월 적지 않아서 손잡이는 귀가 빠지고 깊게 패인 흠집마다 어둠 고여 있을 뿐 쉽게 열리지 않는다 도대체 .. 얼마나 뻑뻑한 더께 쌓여 있는 걸까 마음의 서랍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에 겨워 나는 어쩔 줄 모른다 거기 뒤죽박죽의 또 한 세상 열면 잊혀진 시절 고스란히 살고 있는지 가늠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계속 전화벨이 울려 아무도 수신하지 않는 그리움을 전송하는 소리 적박하다 나야, 외출했나보구나, 그냥 걸어봤어, 사는 게 도무지 강을 건너는 기분이야, 하염없이 되돌아오는 신호음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듯 우두커니 서서 나는 마냥 낯설기만 한 마음의 서랍 끝내 열어보지 못한다 아무래도 외부인 출입금지의 팻말 걸린 문 앞에 서성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는 대낮에도 붉은 등 켜고 앉아 화투패 돌리며 쉬어가라고 가끔 고개 돌려 유혹하는 여자들의 거리에 와 있는 것만 같아 안절부절이다 순정만화처럼 고만고만한 일에 울고 웃던 날들은 이미 강 건너 어디 먼 대양에라도 떠다니는지 오늘 풍랑 심하게 일어 마음의 서랍 기우뚱거리면 멀미 어지러워 나도 쓸쓸해진다 언젠가 뭘 그렇게 감춘 것 많냐고 속 시원히 털어놓으라고 나조차 열어보지 못한 마음의 서랍 우격다짐으로 열어본 사람들 기겁하여 도망치며 혀차던 마음의 서랍은 서럽다 《현대시학》2004년 5월호 현대시동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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