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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꽃아 시들지 마라'를 쓰지 않는 이유/강인한

by 솔 체 2014. 10. 4.

'꽃아 시들지 마라'를 쓰지 않는 이유/강인한

- 시들지 말아라 원추리꽃




1996년에 마돈나가 주연을 맡은 뮤지컬 영화 「에비타」를 혹시 기억할는지요. 거기서 마돈나가 부르는 '울지 말아라, 아르헨티나'라는 노래 들어본 기억이 있을 거예요. 잔잔하면서도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애상적인 가락이 참 좋았던 노래. 졸시는 그 음악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제목을 '시들지 말아라 원추리꽃'이라고 붙였습니다.
꽃아, 시들지 마라.
꽃아, 이것을 어떻게 소리내어 읽어야 할까요. '꽃' 하나만 떼어서 발음하면 '꼳'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조사가 이어질 때 문제가 있습니다. '꽃아'의 정확한 발음은 '꼬차'입니다. 관습상 '꼬다'로 발음하기도 하지만 문법적으로는 맞지 않는 발음이지요.

꽃밭의 독백
- 사소 단장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사소'는 박혁거세의 어머니이다.)

서정주의 이 시에서도 제 7행을 소리내어 제대로 읽는다면 '꼬차'가 맞습니다. 그 어감이 별로 재미없지요. 명사에 모음으로 된 조사가 연결되면 명사 끝의 받침이 그 아래로 소리가 이어지는 게 원칙인 까닭입니다.
'산+에'는 '사네'로, '닭+이'는 '달기'로 발음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꽃아' --> 꼬차
'꽃이여' --> 꼬치여

이런 발음을 고려하여 '꼬차'의 강렬한 파열음을 대신하여 나는 졸시에서 '꼬치여'의 약간 누그러지는 파열음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굳이 '마라'라고 간단히 처리하지 않고 '말아라'의 원형을 쓴 것은 기호(嗜好)라 할 수 있습니다.
'말다'가 기본형인 데서 그 명령형은 '말아라'이고 그걸 줄인 말이 '마라'이지요. '책을 가지고 다닌다'란 말을 줄이면 '책을 갖고 다닌다'이지요. 그런데 '가지다'를 줄인 게 '갖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갖이다'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디디다'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줄이면 '딛다'이지요. 그래서 '발 디딘 땅'을 '발 딛은 땅'이라고 쓰면 틀린 것이 되어버립니다.

오늘 아침엔 마돈나의 '울지 말아라 아르헨티나'라는 노래를 한 번 들어보시지요. 그리고 그 곡을 떠올리며 졸시 '시들지 말아라 원추리꽃'을 읽으면 맛이 좀 다를 거예요.

시들지 말아라 원추리꽃

강인한


백 년 전에도 너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서울시립미술관 이층 전시실에서
발뒤꿈치의 시간을 뜯어내고 내려온
모네의 원추리꽃
시들지 말아라 여인이여
해 뜨면 하늘 푸르러지고
죽었던 짐승도 노래 속에 다시 살아난다
내가 돌아볼 때까지 눈물을 닦고
거기 서 있어라 길고도 슬픈 목을 세우고
백 년의 시간을 넘어 살그머니 돌층계에 앉는 바람
당신이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 한 잔
우리들 사랑도 이처럼 쓰고 또한 달콤했거니
세월이 가도 시들지 말아라
꽃이여 내 여인이여
아직은 당신의 이름 불러줄 사람
저 어두운 지하철역 출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니
시들지 말아라 오랜 옛날에도 아름다웠던 사랑
오늘 다시 네 앞에 꽃피울 사람 있으니


(2007. 7. 15) <문학과창작> 2007.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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