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신 인 문 학 상

<문학과창작> 2007 신인상 당선작/ 강가람

by 솔 체 2014. 10. 22.

문학과창작]신인상 당선작

티티새 화석 외 4편

강가람



원산지 몽골 고비사막의 화석을 보았다.
갈색 깃털이 날아갈 듯 반짝이는 티티새 한 마리,
깃털 사이 실올 같은 틈새가 열리고
전시장 유리창으로 반사된 햇살이
명주솜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화석 속에 둥지를 틀고 햇살과 바람을 불러들이는 티티새
얼룩무늬 화석에 손을 넣어본다.
따뜻한 새의 심장과 부드러운 깃털의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질 것만 같았다.

고향집 뒤뜰 돌배나무 가지에
종종 날아와 울고 간 새
내 마음 속에도 떨림처럼 노래하고 싶은
새의 부리가 있다.

내 사주팔자에도 돌 石 자가 박혀 있다 한다.
가슴 한복판에 뾰쪽이 솟아오른 화석 덩어리
뽑아내지 못할 바에
티티새의 둥지 같은 방 한칸 들여야겠다.

-----------------------------------------------------------------

팔방산호가 살아가는 법



검푸른 바닷속 팔방산호를 아시는지요
새 날개 모양의 방 여덟 개
방마다 여덟 개의 촉수가
한번 걸려든 미끼는 놓치지 않는다지요
흐물흐물한 몸을 너울너울 물속에 펼쳐놓고
갈피갈피 갈기를 세운 축수의 독침을 놓으면
다시는 헤어날 수 없는 마력의 방이에요

동물이면서 식물의 몸을 빌려 살아가야 하는
팔방산호, 남자를 기다리는 거리의 여인처럼
그녀는 날마다 바위에 걸터앉아
화냥끼를 물살에 풀어놓아요
그녀에게 한번 시선을 빼앗긴 먹잇감들은
그녀의 붉디붉은 갈피 사이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다지요

대전역, 자정이 넘어 마지막 기차의
손님을 기다리던 거리의 여자
흐느적흐느적 풀린 다리의 사내를 껴안은 채
골목 안으로 사라지네요

문득 내 손가락의 산호알 반지에도
붉디 붉은 여자의 입술이 찍혀 있는 것 같아
몸이 떨렸어요.

-------------------------------------------------------------------

동학사 배롱나무



눈오는 날, 동학사 계곡에서 배롱나무의 껍질을 보았다.
발치에 수북이 벗어놓은, 아이의 살 냄새가 배인,
이 세상에서 가장 순한 껍질을 보았다.
연하디 연한 신생아의 살 냄새가 배인 배냇저고리 같았다.

눈 속의 껍질 하나를 주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양수가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아
촉촉한 무늬결 따라 힘줄을 감싸고 있던
붉은 실금들이 선명하다.

눈을 맞아 반짝이는 내 손바닥의 손금들처럼
저들의 생애도 저 실금 속에 다 들어 있을까
배롱나무에 등을 기댄 채
웅크린 가슴팍을 포개어 눈발을 맞고 있는
껍질들을 내려다보았다
눈송이가 등에 닿을 때마다 껍질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고 있었다
가슴팍에 가득 품은 좁쌀 같은 것들이
수정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상처의 껍질도 벗어버리면
아이처럼 순한 눈빛의 사리가 된다는 것을
그날, 나는 동학사 배롱나무에게서 처음으로 배웠다.

---------------------------------------------------------------------------

초록 설법



계룡산 비탈길에서 은사시나무를 만났다
파란 혼불이 몸을 빠져 나간 지 몇 년쯤 되었을까
골짜기에 버려진 몸에는 숭숭 뚫린 구멍만 남아 있다
흙덩이에 파고든 초록 가지들 몇 개
살아 생전에 끊어 내지 못한 인연인양
집어드는 순간 툭툭 부서져 내린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는 뽑혀 뒤집힌 뿌리도 보인다
들여다보니 삭아버린 나무밥 사이로
무당벌레의 당집인양
오글오글 온갖 벌레들이 들끓고
만신의 빛바랜 깃발은 숲속의 길손을 끌어모아
징징 징을 울리는 푸닥거리가 한창이다
계룡산 골짜기, 죽은 은사시나무가
삼천대천세계 사는 법을 벌레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색깔도 모양도 공으로 사라지는
우주 설법을
졸졸졸 흘러가는 골짜기 물에게 들려주고 있다
아직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 은사시나무 귀퉁이에
혀를 내민 쇠뜨기풀 한 줄기도
그 물에 목을 적신다.

-------------------------------------------------------------------------------------

빅스의 섹소폰 연주




빅스는 필리핀에서 온 섹소폰 연주자다. 밤마다 야간업소에서 섹소폰을 불고 있다. 빅스의 「닥터 지바고」를 듣다보면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빅스가 보여준 섹소폰의 갈대 리드도 새의 부리를 닮았다

빅스의 뒤로 묶은 금발 꽁지머리도 카나리아를 닮았다. 먹이를 찾았을 때 연신 노란 꽁지를 깝죽거리는 카나리아, 피시그강에 사는 카나리아는 텅 빈 속에 바람을 넣어 우는 것 같다고 빅스는 말한다

제 몸의 일부를 헐어내면서도 멈출 줄 모르는 카나리아 울음소리, 허공에 바람을 둥그렇게 감아 올려 소리를 내지르다가 허리를 구부려 땅으로 낮게 내려앉고, 다시 하늘을 향해 높게높게 쏘아 올리는 카나리아 울음소리,

카나리아 울음소리는 우랄산맥의 닥터 지바고를 불러오고 라라를 불러오고, 피시그강가를 헤매던 어린 빅스를 불러와야 끝이 난다

졸린 듯한 박수소리를 들으며 새벽 잠자리로 돌아가는 빅스의 카나리아 꽁지머리를 볼 적마다 나 역시 가슴 속에서 무슨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귀를 기울인다


--------------
강가람 (본명 강정애) 전북 장수 출생. 부산여자전문대학 수료.

--------------------------------------------------------------------------
[심사평]
자아 성찰의 탄탄한 시적 구조


2007년 『문학과창작』 신인상으로 강가람 씨의 「티티새 화석」 외 4편을 시 부문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번 심사는 강가람 씨의 응모작 20여편을 읽으면서 곧바로 결정되었다. 예심을 거쳐온 여러 응모작들의 수준도 만만치 않았지만, 당선자의 작품이 단연 돋보였기 때문이다.

강가람 씨는 응모된 작품 전편에서 대상과 표적에 대한 전달과 설득력, 공감 등 시의 미학적 표현이 탁월할 뿐아니라 우리네 삶의 바닥까지 껴안아주는 따듯한 연민이 일품이었다. 또한 시적 정서는 자연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인간의 삶으로 밀어올려, 자아를 성찰하는 탄탄한 서사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작품을 추슬러나가는 시적 동력이 좋기에 앞으로의 작품활동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아울러 시인의 서정적 세계가 더욱 확대되고 정신사적 근골이 강화되어 독자적인 세계관을 이루어내길 바란다.

새로운 시인 강가람 씨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선에 오르지 못한 시인들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심사: 문효치·박제천·박승미·송정란(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