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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제10회 <詩로 여는 세상>신인상 당선작

by 솔 체 2014. 10. 26.

제10회 <詩로 여는 세상>신인상 당선작

붉은 虛氣 외 2편

박명남


상사화 꽃잎들, 불꽃처럼 타오른다.

방구석에 비실비실 허깨비 하나 팽개쳐져 있다. 일주일째 치우지 않은 빈 그릇들, 빈 소주병들, 썩어 눌러 붙은 식탁 위의 우유자국들, 창고 같은 방안에서는 정적이 흐른다.

손가락에 끼워진 사내의 담뱃불만 숨 쉬고 있다.

추석 명절이 지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다. 동그랗게 말린 그의 등이 무덤 같은 어둠으로 덮여 있다. 차라리 그에겐 북적대던 지난 세월도 죽음의 단맛으로 다가왔으리라.

검불 같은 마음에 소주라도 부어 사그라지는 불꽃을 피워 보려고 했을까.

무시로 生을 뒤흔들어 온
사내의 칼바람 魂!
수레바퀴를 굴려 흙으로 돌아가는
산 너머 저쪽의 사람!

상상화 붉은 꽃, 일천 조각으로 흩날려 한 점 소식이라도 물어 온다면......
사내가 멍하니 깨진 거울 같은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 속으로 떠나버린 여자, 바람이 되어서라도 이 집의 언저리를 더듬거리고 있을까.
여전히 검은 치맛자락 같은 어둠이 방안을 뒤덮고 있다.

쭈삣쭈삣, 산비탈의 상사화들, 붉은 虛氣 토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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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새


콩새가 시골집 환기통 속에
마른풀들 모아 둥지를 틀고 알 낳고 있다.
잠시 머물다 떠날 그 집
어미 콩새가 집을 비운 사이
호기심에 쫓겨 알들 꺼내본다.

알 깨고 나온 다섯 마리의 어린 콩새들
둥지째 떨어져 잔디밭 위 나뒹굴고 있다.
핏빛 가녀린 저 다리들이라니!
두어 번 날갯짓하다가 머리를 죽지 속에 묻는다.

어미 콩새의 가슴, 너무 아프리라.
나뭇가지 위에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있는 어미 콩새,
더 높은 나무 위에 집 짓지 못한 죄,
무허가 환기통 집 지은 죄, 크고 무겁다.

어린 콩새들, 거듭 둥지가 있던 환기통 쪽
올려다본다. 용기를 내어
잔디밭 위 나뒹굴고 있는 둥지와 어린 콩새들
환기통 속 제자리에 되돌려놓는다.

그래도 자꾸만 둥지 밖으로 뛰어내리는 어린 콩새들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없다.
푸드득거리는 어린 콩새들의 날갯짓들.
어미의 마음과 통하지 않는다.

천둥 번개를 치고 비는 내리려 하는데,
집 뒤 소나무 숲, 어미 콩새 우는 소리라니!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이 마음,
지금도 나는 나를 자꾸 숲 가운데로 끌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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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할 때를 놓쳐버린 붉은 장미가, 가을 햇살 가득 안고 담장 가에 피어 졸고 있다.

뭉개진 꽃잎의 저 殘像, 다 쓸어내고 싶다.

더는 서성이지 마라. 화려함의 絶頂, 여름의 한참은 순간이다.

장미여. 흰 웃음으로 살랑거리고 있는 부추꽃에게나 자리를 내어 주거라.

세상에 고집부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죄 스쳐 보내는 것들뿐이다.

붉어진 네 속마음까지 죄 보내버리자, 뒤꼍 대숲을 타고 불어오는 갈바람을 향해.

더러는 내 안의 나와도 이별해야 할 때가 있다.




박명남 : 1959년 광주 서창(절골)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pmn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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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외 2편

오명선


1
나무들이 모자를 벗는다. 나무는 바람 한 점에도 흐느낀다. 나는 이제야 나무를 읽는다. 제 살 한 점 도려내어 싹을 티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제 살점으로 돌아가는 나무. 나는 배경보다 풍경이 되기 위해 얼마나 허둥댔던가. 술렁이는 바람에 수십 번의 계절을 앓았던가.

2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나 토성동 항암사로 간다. 다음에 만나면 스님이라고 불러.”
자궁암 말기의 내 친구. 낙엽은 계절이 쓰는 유서가 아니라 별에 닿기 위한 유일한 통로라며 활짝 웃는다.
꽃이 필 무렵, 그녀가 방사선실에서 나왔다. 머리에 어둠을 꾹꾹 눌러썼다. 그녀가 덮고 있는 어둠이 백지처럼 깊어서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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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갇히다


집귀신이 된 여자
지을 벗어나면 숨을 쉴 수 없다
귀가 멍멍 눈앞이 캄캄하다
눈을 부릅뜬 차량들이 일제히 자신을 향해 달려든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을 위협하는 무기다
궁금한 집 밖, 거듭되는 실패가 그녀를 집에 가두었다
가장 안전한 곳, 집에만 있으면 모든 게 편안하다
그래서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두 개의 예리한 안테나를 세우고
집안에서 바같 세상에 초점을 맞춘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신문을 읽는다

집귀신이 붙은 여자
연애 한번 못해 봤다
안방의 구들장과 한몸을 이루었다
누가 볼세라 꼭꼭 닫은 문
하루 종일 집과 엉키어
전화벨 초인종소리에 깜짝깜짝 촉수를 세운다
어린 시절, 군에서 죽은 오빠가 일어선다
집에서 나가면 안 돼
바깥은 모두 지뢰밭이야
오빠는 어린 가슴에 뿌리 박혀 자란 지병이다
그녀의 발을 꽁꽁 묶은 강박관념이다
그때부터 집은 그녀의 전부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은행 일을 보고 쇼핑을 하고 세상을 읽는 집이 신발을 끌어안고 잠을 잔다

그녀는 달팽이가 되기 위해 오늘도 발을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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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이불


장롱이 배가 부르다
숨이 턱까지 찬다
장롱 문을 열자
알록달록 이불들이 나를 향해 팔을 뻗는다
다리가 불편해
허리를 펼 수 없잖아, 아우성이다
시집 올 때 가져온 원앙베개와
붉은 목단 꽃이 핀 솜이불 한 채
침대의 뒷발에 차이고
도시가스에 주눅 들어 이불보에 묶여
몸 한번 제대로 풀어보지 못했다
20년 동안 입을 봉하고
귀를 틀어막았을 저 시집살이
분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자 그때부터
짐짝처럼 무겁다
솜이불을 방바닥으로 끌어내려
밀봉한 입을 트자
젊은 엄마가 부풀어 오른다
방안이 엄마로 꽉 찼다
시집가기 며칠 전 두툼하게
목화솜을 놓던 엄마와 씨름한다
머리를 싸매고 몇 날을 궁리 중이다
목화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엄마 몰래
감쪽같이
저것을 들어내야 하는데…

20년 전의 엄마가 장롱 속에 살고 있다


오명선 : 1965년 부산 출생. 부산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까치글짓기논술 공부방 운영.
oms34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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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詩로 여는 세상》2009년 상반기 신인상에는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다. 그 위상이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詩로 여는 세상》에 그 어느 때보다 읽을 만한 가편들이 투고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올라온 여러 작품을 윤독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하였다.
예심 통과 작품은 박명남, 오명선, 오승근, 이지희 등(가나다 순) 모두 네 분의 작품들이었다. 이들의 시편은 저마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오랜 습작 경험과 안정된 구성 능력을 보여주었다. 최근의 유행 담론에 대한 추수를 거절하면서,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과 표현의 개성에만 심의를 쏟은 것도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개성과 완결성의 결속을 통해 우리 시의 미래를 개척해가려는 긍정적 면모라고 생각되었다.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오명선 씨와 박명남 씨의 시편들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오명선 씨의 시편들은 신선한 언어 감각과 삶을 바라보는 짙은 페이소스가 남달리 결속되어 있는 안정된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기억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narrative)를 선보이는 능력도 좋아 보였다. 특별히 심사위원들은 긴 호흡 속에서 시를 구성하는 능력에 신뢰를 보냈다.
박명남 씨의 시편들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구체적 삶이 잘 나타나 있어 매우 반가웠다. 시의 이미지를 구사하는 능력도 탄탄한 훈련 과정을 짐작케 하였다. 시편 모두를 관통하는 매우 익숙한 이미지와 어법이 단점으로 지적되었지만, 안정된 형상화 능력과 작품들 사이의 작은 편차가 시적 능력을 신뢰하게끔 하였다.
그 밖에도 구체성 있는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적 성채를 구축하는 시편들이 많았음을 부기하면서, 다음 기회에 더욱 풍성하고도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기원해본다.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드린다.


심사위원 : 허형만, 이명수, 유성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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