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현대시 작품상〉 수상작
소나기 온 뒤
채호기
그때 내 앞에, 포옹하기엔 너무 큰 나무.
흰 북극곰 같은 서늘한 바람이
여름 큰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나뭇잎들이 부풀어오르며 뒹군다.
뜨거운 입 안의 얼음들, 여름의 빛나는 결정체들.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어떤
환희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낯선 시간, 낯선 얼굴,……
낯설어 멈춰 서고 싶은 다정한
거리에 햇빛은 빈틈없이 찬란하고,
갑작스런 생의 전환이 눈부시다.
물 묻은 태양이 덜 마른 공기를 털어낸다.
부유하는 물―먼지들, 설명할 수 없는
삶이 여전히 낯선 길모퉁이로 빨려든다.
텅 빈 거리에 한 마디 말이 남아 반짝인다.
아직 마르지 않은 구석에 고인 빗물,
말하고 싶은 욕구로 혀 밑에 침이 고인다.
―2007년 〈현대시 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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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기 1957년 대구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지독한 사랑』『슬픈 게이』『밤의 공중전화』『수련』 등.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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