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완료
끈질기게 웅크린 외 2편 / 한성희
물길 끊겨 뱃가죽 훤히 드러난 동강의 자갈바닥
씨암탉만한 돌멩이 하나가 막 산란하고 있다
휘어진 등으로 무수히 내리꽂히는 햇살을 받아내는
반질반질한 등어리, 슬며시 들쳐본다
구석으로 몰린 물구덩이에서 파닥거리는
여남은 마리 물고기와 개구리들
단단한 돌멩이 하나가 날개와 지느러미를 접고
뙤약볕 아래서 강을 품고 있는 것이다
자갈 강바닥을 둥근 몸으로 파내고 물기를 긁어모아
동강의 새끼들을 품고 있는 것이다
제 몸의 무게만큼 물기를 머금고 있는
침묵의 힘
수천 길 직립의 절벽에서 떨어져나와
수만 갈래의 물길에 몸 뒤집다가
거친 물살에 몸 낮추고
강바닥이 훤해지기를 기다렸다니
제 체온으로 강의 명줄을 잇고 있다니
마른 강바닥에 끈질기게 웅크린 돌을
함부로 들춰볼 일은 아니다
둥근 등이 단호하게 땡볕을 튕겨내고 있다
플러그 / 한성희
검은 전선 플러그를 콘크리트 벽에 꼽은 뒤에야
겨우 숨 쉬는 노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 벽에게서 듣는다
여름휴가 떠나기 전 집안을 살피다가 거실 벽에
두 눈 박고 있는 티브이 플러그를 발견한다
종일 수인(囚人) 곁에서 웅웅거리며 바깥세상 얘기를 들려주고 한번도 날선 시선 던지지 않는 낡은 티브이 두대에 연결된 플러그, 번갈아 검버섯 손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넘기는 검은 줄을 생각하면 쉽사리 저 명줄을 뽑는 일, 아니다
플러그를 뽑는다는 것은 노인에게 묶인 탯줄을 잘라내는 불충(不忠)한 짓
당신 이름 석자도 놓쳐버린 엄니의 당산나무 뿌리를 끊어내는 일
엄니는 내 몸 어딘가에 들숨 날숨의 구멍을 뚫어놓고 시리게 꺾이는 뼈마디소리 흘러들어가는 플러그를 악착같이 붙들고 있을 것이다
난, 플러그 가는 뿌리 끝을 붙잡고 다시 한 번,
벽 쪽으로 힘껏 밀어본다
핑, 강한 전류가 심장을 관통한다
뜬 숟가락 / 한성희
노인복지 요양원 휠체어에 웅크린
오래된 자물통 같은 입이
숟가락을 뻘줌하게 쳐다보고 있다
반쯤 벌어진 입구 속으로
애써 숟가락을 들이미는 사람
의자에 앉은 또 한 사람은
막무가내 허방을 뱉어내고 있다
무슨 말인가 열심히 씹어서
입안에 가득 넣어주고는
미음그릇 곁에서 흔들리는 저물녘
저 검은 입속으로
더 떠넣을 수 있는 것이
도무지 없을 것 같아
단호한 입가를 맴도는
허공의 숟가락질
어떤 허기가,
지금까지 먹인 밥보다 강건한 것일까
기울어진 햇살만으로도
한 끼를 떼울 수 있다니
허공에 뜬 숟가락
한성희 시인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신 인 문 학 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09년 여름호 <애지> 신인 문학상 수상작 / 최계순 (0) | 2015.01.11 |
|---|---|
| 2007 년 제7회'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 시 당선작-뻘밭 외 5편 / 이용헌 (0) | 2015.01.09 |
| 2009 미당문학상 / 기하학적인 삶(김언) (0) | 2015.01.07 |
| 2007년 〈현대시 작품상〉 수상작 -소나기 온 뒤 / 채호기 (0) | 2015.01.06 |
| 창간44주년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_ 박성현 (0) | 2015.01.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