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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08년 제1회 서정과 현실 등단작/백양나무 외 /유행두

by 솔 체 2015. 1. 26.

  2008년 제1회 서정과 현실 등단작/백양나무 외 /유행두

 

  백양나무


허연 뼈 드러낸 둥지 무릎에

콩새가 집을 짓는다

밤낮 쉴 새 없이 쪼아대더니

연골을 파내고 들어앉았다

아직 머언 먼 닿지 않을 봄인데

서리 오는 소리라도 들은 것일까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옹이 간질이고 돋은 잎 더듬이며

둥지 찾던 소리와

되돌아 허공 맴돌던 날개의 애처로운 몸짓

그때엔

늑골 떼어 쉬게 해 줄

빈 마음 한 켠 없었다는 것을


살점 하나 남지 않은 시린 어깨에

하늘이 내려 앉는다

쓰린 마음 가만히 무릎에 대어본다

깃털이 따스하다.



===딱지


길을 가다 넘어졌다. 청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살이 패였다. 아픈 것 보다 넘어질 때 포즈가 더 창피했다. 상처도 없으면서 아픈 어깻죽지보다 딱지 낀 무릎을 꿇고 바닥을 걸레질 하는 게 더 불편하였다.


코딱지만한 집에 빨간 딱지가 붙을 때도 그랬다. 식구들이 찢어지고 현관문이 패였다. 배고픈 것보다 망했다는 게 더 창피했다.

상처를 숨겨놓은 남편의 가슴보다 세상에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는 것이 더 불편하였다.


발가락에 걸레를 끼워 바닥을 닦을 때마다 냉장고에, 장롱에, 전기밥솥에… 구르지 못하는 승용차 바퀴에… 딱딱한 포즈로 붙어있던 딱지들… 근질거렸다. 뜯고 싶어… 슬그머니 상처를 들출 때마다 시골집에 맡겨 놓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피고름처럼 흘렀다.


꾹, 도장이 잘못 찍힌 등기필증을 남의 손에 넘겨주고 게딱지처럼 세상의 옆으로만 자리를 옮겨 다녔다. 딱지 아래 시꺼먼 화를 뜯어 낼 때마다 하얗게 무언가 차오르는 게 보였다. 쉬 아물어지지 않는 상처에도 새 살이 돋는지 삶이 자꾸 가렵다.



===버드나무의 계보


시조 柳차달은 고려 왕건이 입성할 때 수레 군사 내어주어 차달이라 불리어 졌다는 이름. 그의 아들의 딸 柳관순은 버드나무 창살에 버들버들 목 내밀고 만세 부른 이름.

車씨 아들의 아들은 역적. 버드나무 아래서 버들잎 붙들고 버들柳로 성 바꾸었다는 속설만 믿고 자란 나는

조상이 잘 굴렀으니 나도 물기 없는 세상에서 구르기는 잘 굴러.

조상이 버들버들 목청 높여 만세 불렀으니 나도 세상에 두 손 들고 항복은 잘 한다는 새삼스런 기억 속에

버들잎처럼 떨어져 흔들흔들 車씨처럼 구르다가도

柳-토끼 귀처럼 아래로 쳐지는 나무는 버드나무다

한자 하나 외우며 한 세월 어디로든 토끼고 싶다가도

버드나무 둥지에 오순도순 둥지 잡은 柳차달의 족보에 뛰어올라앉고 싶은

나는 버들柳, 버들버들 꼿꼿, 흔들리는 불혹에 앉아 버들잎 내미는 버드나무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딸.



===금의암


대문 이라고

진짜 대나무 대문 열고 들어가


가리지 않은 책 묶음에 책물이 무명옷 다 적실 때까지 한 삼년 보낼 수 있다면


얼룩진 황토방에 선녀 옷 훔쳐보지 않은 나뭇꾼이 긁어 놓은 군불 지펴서 호랑이가 물어도 씹힐 것도 없는 뼈마디 다 녹을 때까지 한 삼 년 단잠 자 봤으면 싶다네


풍경소리 금동산 그네 타고 다니면 울타리도 서까래도 없는 금의암, 라일락 연산홍 나폴대는 마당가 한 서너 달 흙이 되도 외롭지 않겠네


여승 웃음 한 방울 내 볼에 묻히고 색깔 냄새 다 잃어 마음 다친 옛 동무랑 실없이 한 사흘 웃어 본다면


초승달에 걸터앉은 여우 우우~ 단풍잎 적셔도 아무 곳도 떠아지 않을 한산한 가슴 서너 시간 쯤 가져본다 해도


대문이라고

진짜 대나무 대문 있는 그 곳에

한 삼십 분 다녀와서 삼십 년 쯤 생각해도.



===가야교차로


구불구불 오다가 멈춰 선 여기

신호등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희미한 이정표엔

직진하면 신라로 가는 길이라 하고

가야가 사라진 낙동강 갈대밭으로도 이어졌다 한다

좌회전 신호 끝에는

여섯 옹주를 낳았던 왕비가 한 맺혀 불어놓은 입김처럼

안개에 젖은 도시가 있다고

그곳엔 오래 전 이 도시를 다녀갈 때

걸음이 느리면 역사 속에 남겨 놓고 그냥 가버린다던

유적을 안내하는 여자가 산다

우회전 신호 옆

수레바퀴 굴리는 토우 그림집엔

가야금 열두 줄로 우륵이 위로하던 왕비는 없고

탬버린을 흔들며 여자가 일한다

여자의 가슴 아래 배뿔뚝이 전광판

분분한 설화가 썰물에 씻겨가다가

소라 몸 속으로 숨을 때

어느 입 큰 사람이 초장도 찍지 않고 꿀떡 삼킬 듯한

횟집 광고가 한창이다

노란 신호 아래 바쁜 듯 生을 건너는 사람들

마흔이 지나도록 길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정적 소리가 설익은 가야를 누른다

부록 같은 오후가 휘청거린다.



===헛제삿밥


마구마구 넣어, 괜찮아

시간당 백 밀리쯤 퍼붓던 눈물도

흐린 탕국 한 국자면 풀어질 거야

질긴 모가지에 덩어리째 걸려있는 찬밥

비벼!

고사리 같은 실핏줄도 넣어버려 넣어!

불룩해진 눈두덩

살갗에 머물러있던 첫사랑처럼 아리게 비벼!

재미없는 꿈을 꾸는 시체 같은 표정은 짓지 마!

천연색 가을이 떨어지는 고추장 같은 나이지만

아무렇게나 코를 후벼도, 풀어도, 귀를 후벼도

괜찮아 이젠!

다시 시작하는거야.


언니가 숟가락을 잡네 노란 양푼이에 밥이 질질 끌려가네 푸성귀 같은 아이도 올라가네 꿀꺽, 영정 사진 형부도 들어가네 넙적한 그릇 귀퉁이에 환하게 빨간 삶이 웅크리고 있네

배부른 언니 배꼽 속에 가느라한 生 하나 연한 꿈 꾸고 있네 들썩거리네.



===內동 629번지


외발 리어카에 어둠을 담고 골목을 오른다

골목이 내 모습처럼 흔들린다

어둠을 밀어내고

늦도록 돌아가는 아내의 미싱소리

아내는 끊어지는 윗실을 바늘귀에 끼우며

띄엄한 삶을 깁고 있을 것이다

북집에서 밑실 한 가닥 뽑아 꿈을 기웠던 친구들도

되돌림질에 헐어 이제는 이 골목을 오르지 않는다

흔들거리는 골목을 혼자 오르며

조임새를 맞추고

삐걱이는 꿈을 다독여 눕힌다

피댓줄을 끼우고 헛도는 북집에 기름도 친다

아내도 가끔

드르륵거리는 미싱 소리처럼 끓어오른 가래침을

하청받은 삶 위에 카악

밷어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무좀 걸린 아내의 미싱소리 소복한 오르막 끝 집

골목을 꼭 잡는다

실눈 뜬 아내 서녘 끝 초승달에 生 한 가닥 끼우고 있다.



===새잡이


거울 앞에 앉으신 아버지

어깨보가 헐렁합니다

바리깡날에 넘어지는 머리카락은

가슴으로 흐르고

너무 웃자라 누운 몇 가닥 위,

건너가지 못하고 철컥,

멈추는 기계소리, 들여다보면

아버지 휘청휘청 화투장에 새 잡으러 가십니다

공산명월 하얗게 머리에 쌓이도록

새 꼬리 놓치고

그림자만 쫒으시는 눈시울 붉은 아버지

아무 일 없다는 듯

대청마루 올라 오십니다


이제는 내가 오래 전 벗이 되고

누이가 되기도 하는데

지나는 바람에도 아버지

이제는 새잡이 떠나실 수 없음을


까마귀 대문에서 조문을 연습하고

고름진 욕창 손톱 밑 벌겋도록 긁으시는 아버지

가만,

가만 계세요 아버지!

너무 짓물러서 저도 지나기 힘들거든요.




===========================================================당선소감

-유행두 

-1966년 경남 하동 출생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7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재중인 어머니를 가슴에 안고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살갗을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다는 것, 숨결을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는 게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 이었습니다. 자라면서는 생일 아침에,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어보는 게 가장 큰 소망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자리에 詩가 찾아왔습니다. 시는 늘 부재중인 내 어머니 같아서 살갗을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았고 숨결을 느끼고 싶어도 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겁에 질려서, 때로는 가슴이 아파서 울었던 것처럼,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시 한편이라도 쓰고 싶었습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는 시의 형체를 찾아 꽤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무덤  가는 길에서 보았던 바람이며 새 울음소리며, 그 단편 소설만큼의 배경들이 그리웠습니다. 장편소설만큼 어머니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무덤 앞에 퍼지고 앉아 마음 놓고 펑펑 울어보고 싶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시를 쓰고 싶을만한 이유였었습니다. 어머니 없는 세상에서 어머니의 막내딸은 세상의 어둡고 낮은 자리에서 이렇게 저렇게 살았노라고. 그래서 아프지 않으시냐고. 제가 시인의 이름을 부여받는 날, 어머니의 무덤 앞에 찾아가 왜 그리 일찍 제 곁을 떠나가야 하셨느냐고. 살아온 날들을 고자질도 해보고 따지고도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제 곁을 떠나가신 나이에 제 나이도 가까이 다가갑니다. 턱없이 부족한 글로 감히 시인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제대로 여물어지지 않은 제 시는, 결혼할 때 세트 샴푸를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우리집 두레밥상처럼 찌든 때가 덕지덕지 묻었지만, 유행이 지나 꽃잎이 바래버린 접시처럼 낡았지만, 제가 보아왔던 세상처럼 좁고도 어둡겠지만, 신혼 주부가 만든 된장찌개 맛처럼 간도 맞지 않겠지만.

두고두고 제 손맛이 느껴지는 시를 쓰고자 다짐합니다. 제 작은 눈으로 보았던 어둡고 낮은 세상 사람들의 삶이 웃음으로 승화될 수 있는 시를 쓰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부족한 점이 수두룩한 제 글밭에 자갈을 골라내고 씨를 뿌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잡초를 뽑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거름을 주신, 진정한 알곡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신 감사한 분들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쓰겠습니다. 

개망초꽃 피어있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햇볕이 제일 먼저 닿는 하늘 가까운 곳에 계시는 어머니. 저는 詩를 어머니처럼 짝사랑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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