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신 인 문 학 상

제59회 <문학사상> 상반기 신인문학상 당선작 / 가장 뜨거운 씨앗 외 4편 / 정미정(鄭美貞)

by 솔 체 2015. 1. 27.

제59회 <문학사상> 상반기 신인문학상 당선작

 

 

  가장 뜨거운 씨앗 외 4편 / 정미정(鄭美貞)

 

 

     내 말에 심지가 느껴지십니까

     그럼 불을 붙이세요

     백열등을 켠 당신의 눈동자에

     활활 타오르는 나, 바짝바짝 혀부터 마르네요

     언제 가슴 밑바닥을 헤집었나요

     벼린 이빨 사이 야무지게 장전한 16연발탄

     서로의 급소에 맞춤인 걸요

     햇살이 머릴 박으며 뛰어드는 당신의 단도

     잽싸게 내 머릿속을 갈가리 찢어놓자

     꼬리에 불붙은 양 날뛰는

     짐승 한 마리

     벌겋게 달군 긴 혀로 당신의 목을 휘감아 절벽 아래로 내던졌어요

     악착같은 당신도 질세라

     날 선 혀 안에서 서슬 퍼런 기관총을 마구 쏘아 올렸죠

     웃을까 말까 하던 당신과 나의 관계,

     확실하게 찢어져 버린 거죠

     악!

     떨어진 살점들이 사이렌처럼 울고 꺾인 팔다리가 구급차를 부르네요

     - 뻣뻣하게 굳은 혀를 절단해야 합니다

     - 피가 엉긴 시간들도 잘라내야 합니다

     날콩 같은 비린 물내가 두 볼을 타고 흘러요

     낭자한 말의 탄피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당신 손바닥 위

     미안해,

     그 작고도 여린 씨앗 한 알

     이제 떨어뜨릴까 해요

 

 

 

 

   베토벤바이러스 / 정미정(鄭美貞)

 

 

       코끝에 앉은 말랑말랑한 공기가 견디기 힘들다면 주저하지 말고 옷을 벗어 봐

     처음이라는 듯 알몸을 모로 세우고 엄지발가락 꼬물꼬물 파고드는 두려움의 길

     따윈 이젠 접어 버려 남은 네 개의 발가락 위로 가지런히 시선을 떨어뜨려 봐 팅

     팅 소리가 나게 묶어 봐  너의 뒤로 와서 안는 내 몸이 차갑다면 아주 조금은 떨어

     도 좋지 나의 손길이 스치는 살결의 무늬에 따라 첼로처럼 울어 봐 서 있는 것이

     어색하다면 누워도 좋지 내 목에 목도리인 양 안겨 바이올린처럼 울어 봐 너를 읽

     는 내가 가빠지잖아 포르테 포르티시모 프레스토

 

       바삭하게 구운 햇살이 배를 깔고 누운 11월 오후란 말야 귓볼에 맞닿은 허공이

     말이야 흘러내리는 바람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 집어넣어 만지는 체취란 말야

     발가벗은  내 영혼에 소소히 소름이 서리처럼 앉으면  도드라진 실핏줄 여든여덟 개

     만 묶어 봐 발목을 당기면  낮은 레로 웃고 손목을 잡으면 파 하고 웃겠어 내 혀가 내

     는 소리에 너조차  여든여덟 개의 이빨을 열고 웃어제끼는  순간은 말이야  가장 완벽

     한 피아니스트의 연주이거든

 

       커다란 나무일수록 딱딱한 껍질 속에 부드러운 속살이 맨발로 춤추고 있음을 너

     는 알까 아주 부드러운 혀로만 조율되는 내 커다란 호두나무피아노, 주저 말고 너를

     벗어 봐

 

 

 

 

   뱀장어스튜 / 정미정(鄭美貞)

 

 

     새로운 요리법 하나 소개하죠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자, 소매부터 걷어 볼까요

     일단 오르고 싶은 산 앞에 서세요

     그런 다음 뚜껑을 열어

     빼곡히 들어찬 비늘 같은 나뭇잎들

     측선물결운동으로 기어오르는 길에 자신을

     집어넣으세요

     꼬불꼬불 길을 따라 몸을 풀면 늑골 사이 호흡이 아코디언 연주를 할

     겁니다

     슬슬 온도를 올려주세요

     아마 당신의 비점등에서 요동을 치게 될 겁니다 이때

     참으세요

     참아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온도를 중불로 낮춰 뭉근하게 끓이는 거지요

     가끔 벌깨덩굴 향초롱 솔솔 뿌려 넣고

     저만치 쪼르르 달려가다 돌아보는 청설모 맑은 눈도

     집어넣으세요

     메제비꽃이 작은 소리로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서

     땀구멍 숨구멍 다 열어놓고

     끌어안아주세요

     당신이 담긴 모든 것들과 소통하게 될 때

     비워지고 없는 나, 비로소 느낍니다

     딸그락달그락

     수다스런 냄비뚜껑 사이로 퍼지는

     구수한 당신의

     맛,

     한번 느껴보세요

 

 

 

 

   가장 강력한 접착제 / 정미정(鄭美貞)

 

 

     막,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

     연약한 부리에 물고 산등성이 너머로 숨기는

     저 새의

     힘

 

     땅땅, 제 몸에 못을 친 목련

     보안 알몸을 걸어

     속 부신 깃발이 되고야마는

     힘

 

     아직은 시려

     열어두지 못한 창 너머 베란다

     환장하게 피어난 철쭉

     따라 실실 웃을 수밖에 없는

     힘

 

     수맥을 찾아

     끝없이 길을 나선

     막막한 지난 시간 도르르 말아

     하늘님 야윈 손가락에

     노오란 가락지 기꺼이 되는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

     그 힘

 

     봄이다

 

 

 

 

   병천아우내순대 / 정미정(鄭美貞)

 

 

     주인아지매 농익은 입담처럼 잘도 터진 순대는

     비린내를 갖은 양념으로 재웠다는데

     고소한 육즙은 오리지널이라는데

     가늘고 부드러운 소창이 뭉텅뭉텅 입맛을 확 당기는데

     관순아! 관순아! 내 말 들리나

 

     장터 국밥 가마솥에 한 김 오르면

     등짐 부린 사내들 툭툭 어깨 털며 아무렇게나 마주앉아

     식구처럼 매운 눈빛 쓰다듬으며 후후 시린 삶 불어가며

     서로 입김을 나누느라

     더운 열기에 붕대처럼 싸여 지워져가는 줄도 몰랐다는데

     관순아!

     선지 같은 긴 어둠에 박힌 뼈 속까지 쩌렁거리는 너의 앙칼진 외침

     아우내 어느 마룻장 밑에 펄럭이고 있단 말이냐

 

     오백구십구 페이지 한국사의 이해

     단 한 줄도 널 이해하지 못했구나

     무명저고리 치마로 일제의 총알 받아냈더니

     참말로 무명이구나

     관순아! 관순아! 내말 들리나

 

     유전되지 못한 네가

     유악약고 비굴한 네가

     독한 소수가 아니면 불러내지도 못하는 너를

     막소금에 찍어 삼키고 있다

     갈가리 찢어진 네가

     땅켜에 잦아든 검붉은 네 심장이

     한 끼 주린 허기 위해 들어선 후미진 골목식당

     뒤돌아서 본

     신장개업 간판 위에 떨며 서 있구나

     관순아!

 

 

    

다채로운 현대시단에 꼭 더하고 싶은 시인

시부문 심사평

심사위원(유안진 시인, 김유중 문학평론가>

 

   문학 특히 詩가 우리 시대에 어떤 매력을 갖게 하는지, 이번에도 총 213명의 응모자들이 각기 열 편의

작품으로 응모했으나, 심사위원 한 사람이 최소한 1060여 편의 작품을 심사한 셈이다. 농경 시대에 감성

에서부터 가 본 적 없는 미래로 데려가 주는 상상력을 보여 준 작품에 이르기까지,광대하고 아득한 시간

과 공간을 연출해 주는 응모 작품들은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이처럼 다양하고 다채로운 응모 작품 중에서,

지금의 우리 현대시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게 해 주고 싶고, 당당하게 앞세울 수 잇는 참신하고 깜짝

스럽고 재치로 무장한 작품을 선정하고 싶었다. 예술은 사기다. 경련이다 발작이고 반란이고 놀라움이고

진실이고 감동이다.... 등등의 무수한 개념도 물론 고려되었으리라.

 

   오랜 내공의 낌새가 내비치는 작품, 오랜 연마의 과정에서 시에 대한 안목과 발상과 구조화 및 표현 기

교 등에서 깊이와 크기가 가늠되는 작품을 뽑고 싶었다.정식으로 등단한 시인 수만도 2만이라는 현재, 그

렇고 그런 작품을 뽑아서 新人이라고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 시단에 팽배해 있으니까.

 

  따라서 우리 시대의 시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 최소한 열 편의 응모작들이 일관

성 있게 비슷한 방향을 지향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심사한 결과,  6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 최종심

에 올라온 6인의 작품을 두고 3인의 심사위원이 의견 일치를 본 결과, 정미정 씨와 김성신 씨의 작품이 남

게 되었다. 김성신 씨의 <히말라야 물고기> 외의 작품들은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시세계의 흐름으로 상당

기간의 습작기를 거친 흔적이 엿보였고, 정미정 씨의 작품은 어조에 감춰진 은근한 힘을 확인하게 해 주는

작품이라고 판단되었다. 특히 전달하려는 시 세계에서 무게감이 느껴졌고, 짜임새에서 다소 불안감은 있

으나, 전체적으로 발상이나 구조화 및 기발한 표현과 기교 면에서 김성신 씨보다 재치 있고 참신하다는 의

견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정미정 씨의 <가장 뜨거운 씨앗> 외 네 편<베토벤바이러스>.<뱀장어스튜>.<가장 강력한 접착제>.

<병천아우내순대>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정미정 씨는 <써지지 않는 봄><고흐와 사이프러스 1/2>

에서 기발함과 발랄함이 참신하며,  슬픔과 아픔 이상의 감동을 느끼게 했다. 따라서 우리 시단에 내세울만

한 新人다운 능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되었다.

 

    안타깝게도 김성신 씨의 경우 <히말라야의 물고기>.<아버지 등에 도배지를 바르다>.<화성 탐사 로봇>

<하늘엔 수천 개의 연탄이 타고 있다>.<나비처럼> 등 좋은 작품에도 불구하고,<인어>.<곰탕>.<새끼손가락>.

<나무상자>.<나비처럼> 등은  정미정 씨의 참신함에  못 미친다는 것이 중론이었음을 알려 드리고 싶다.  시는

언어를 다루는 언어 표현 예술임을 염두에 두기 바라며, 다음을 기약하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자 한다.

 

 

 

 

시부문 당선소감

 

 사람의 생각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보다 소중한 것을 찾아낼 수 없다.

경전의 한 말씀이다. 시를 쓴다는 것이 나를 치장하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모나고 뾰족한 모습들을 좀 봐주

라고 세상에 내놓는 일 어쩐지 두렵다.

 

 포슬포슬 팥고물 같은 비가 내리는 오후에 살풋 잠이 들었던가 보다. 멀리 풀벌레 한 마리 애달프게 울어 대더니

나중엔 귓가에 대고 울어 댔다. 그런데 내 휴대전화 벨소리랑 똑같은 것이 아닌가. 아! 뭐랄까 알록달록 깜찍한 무

당벌레 한 마리 귓속으로 날아든 것 같았다. 달팽이관 언저리에서 그 작고 투명한 날개를 포르르 터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내 겨드랑이에서도 그런 날개 돋는 떨림이 오래도록 왔다.

 

 유치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작은아이 손을 잡고 시작한 시가 멀리도 왔다. 더럭 겁이 난다. 잡아먹지는 않겠지만 아

예 꿀떡, 먹히고 싶은 심정이다. 한낮에 지하나 터널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뜩해지지만 다섯 호흡쯤 숨

을 고르면 사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게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싶다.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는 변변찮은 내 시에 시원하게 물줄기를 쏟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물수제비뜨

듯 마음을 치고 가는 얼굴들이 있다. 시종일관 내 시를 믿고 기를 불어넣어 준 동향 언니 그리고 이해웅 교수님과 문우

들 무엇버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겨주는 남편과 두 아이들을 시와 더불어 내내 사랑할 것을 약속

한다.

 

 

정미정(鄭美貞)

196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문학사상> 2008. 7월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