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슬의 「꺾인 꽃」을 읽고 / 진 란
꺾인 꽃
정소슬
꺾인 꽃, 여기 있다
저기도 있다
자연 속에서 섭생해온 자생 꽃이 아닌
관상용으로 키운, 철두철미 사람 입맛에 맞춘 하우스 꽃이라지만
꽃은
꽃이다
이 꽃도 父가 있고 母가 있어 그 사랑으로 태어났을 거다 지대한 축복과 정성으로 자랐을 거다 채 꽃망울도 맺기 전 낯선 가위에 댕강 잘려야할 운명이라곤 꿈에도 모르고 컸을 거다 그래서 써늘한 가위가 그녀의 허리를 꺾고 있을 적에도 이름 대신 값으로 명찰이 붙여지는 좌판 위를 개처럼 끌려 다니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거다 현기증만 자욱한 좌판 위, 피곤한 기색이라도 보일라치면 사정없이 물이 뿌려지고 오로지 호가에만 관심을 둔 비정함 아래 눈길만 스쳐도 스마일 스마일하도록 철저하게 길들여져 비몽사몽 여기까지 팔려왔을 거다
지금, 발가벗겨진 나신으로
생애의 피곤을 화병에 담근
저 꽃,
투명 유리벽을 통해 드러난
저 어린 소녀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대체 누가 미소짓고 있는가?
―《주변인과 시》 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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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보이지 않는데 왜 이리 아픈가
요즘에 지면을 펼치든 텔레비전을 켜든 인터넷을 열든 모든 곳에 장자연의 리스트 파문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꺾인 꽃이 어디 장자연 하나뿐일까마는.
곰팡이피고 냄새나던 곳들이 들추어진 것뿐이다. 음성적으로 관행이 되어왔을 상처들이 여기저기에서 곰팡이 냄새를 풍긴다.
꺾은 사람은 누구? 다 모르쇠. 내 탓이 아니야, 자기관리를 자기가 안한 탓이지...
꽃병에 꺾여 뿌리도 없이 잘린 자리가 썩어갔을 수많은 꽃들, 시들어가고 병들고 버려졌다.
아마도 그 아픈 상처를 시인은 들여다본 게다. 아픔과 상처를 들여다보고 더 환하게 그 생채기를 들여다보라고...
그건 비단 그들만의 누이가 아니었고 그들만의 딸이 아니었다는 것.
바로 내 딸이었고 내 누이였고 내 친구였을 것. 분개한 슬픔이 녹녹하게 화를 삭인다.
컴퓨터에 올려둔 문효치 시인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를 틀어놓고 들으면서 늦은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주말에 올라오는 남편을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몇 시쯤 올 거냐고 전화를 해볼까 하는 참에 전화가 왔다.
운동하고 저녁 회식하고 올라온다는 말, 그래∼. 힘없이 대답하고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짝맞추어 놓다가 문득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이 늦는다는 게 눈물날 일이 아닌데 왜 하필 그 순간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요즘 이 노래를 들으면서 쏟아져버릴 것만 같은 내 모든 것들이 와악 하고 달겨든 것이다.
상처도 보이지 않으면서 아픈 통증들은 왜 이렇게 많은가. 그래 자연아, 어디든 가서 행복하길, 은주야 어디든 가서 행복하길, 진실아 어디든 가서 행복하길.
그녀들은 우리에게 늘 고운 미소와 환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그저 환한 웃음 뒤에 있었을 삶의 애환과 고독과 피곤함을 간과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적.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행복할 수 있다면 이 생이 서글프고 고달파서 견딜 수 없었다면, 더 이상 자기를 훼손할 수 없어서 택했던 길이었다면, 그래 어디든 가서 행복하기만 해라.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본 적 없지만 육신을 벗어난 세상은 좀 어떤지,
뿌리가 없이 문들어지던 상처에 피어난 균들이 어떻게 소멸하는지 말해주렴.
이 봄, 꽃들은 사방천지 어디든 피어나서 찬란한 봄을 설레고 있는데 바람은 또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구나.
- 진 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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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 다음 블로그 《오후 세시의 낮달》 blog.daum.net/jinran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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