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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조연호의 '천문(天文)' 감상 / 김명원

by 솔 체 2015. 2. 3.

조연호의 '천문(天文)' 감상 / 김명원

천문(天文)

조연호



하늘의 문자에서는 분무 살충제를 뒤집어 쓴 벌레처럼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전주의자로서의 나는 별의 운동을 스스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별과 나 사이가 투명하지 않다고 여긴다.
전달에 대한 의문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성난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분노에서는 평화로운 멜로디가 떠올랐다.

달 앞의 우리는 외양간 같은 영혼을 숨기기 위해 작은 판板이 되어 있었다.
내가 너를 갚아줄 것이다.
물 밖에서 자기의 이해되지 않는 몸을 바라보았던 흔적이 밤에겐 적혀 있다.
내가 너에게 겨를 묻혀줄 것이다.

묵매(墨梅)를 치던 사람,의 별자리
모음이 올 자리,의 별자리
서로 헤어지지 않도록 별들은 내게 악취를 모아주었지.

내가 만약 해바라기라면 내 얼굴을 조각조각 나눠들고 가을의 아이들은 나를 떠난다.
그럼 나는 텅 빈 구멍마다 삶은 빨래를 집어넣고
고장 난 얼굴이 되어 아이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고대(古代) 이야기가 입방체에 관한 이야기의 용사(用事)인 것처럼
그가 내게 개구리들을 보내셨다.
밤마다 물가에선 따라 부르기 비좁은 애곡(哀哭)이 들끓고
나의 막대가 나에게 주는 고마운 자해 때문에
이불 밑이 부끄러운 줄도 지켜지는 줄도 몰랐다.

웅덩이와 달라붙은 남자여, 나는 소년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이별은 보통의 추위처럼 격벽 밖에서 쓸쓸한 것들과 달라붙고 있었다. 깊은 잠을 상속받은 사람은 (자동)떨어지다, (타동)떨어지다, 이등변(二等邊)에서 얼마만큼 탈락의 넓이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붙이면 없어지는 그런 표현이 된다.

가장 밑에 고인 바람을 움직이기 때문에 나는
머나먼 인간을 별의 이행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계(系는) 방점에서 결점으로 이행한다.
나는 소맥을 한 줌 쥐고 <그리하여, 만일>이라는 우주 한가운데 떠 있었다.


― 《현대시》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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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율로 조율하다 / 김명원



태양이 있어 생체 에너지가 급증하는 노동의 시간에 우리는 존재에 대한 의혹을 방기한다. 존재의 비밀을 알고자하는 자, 밤을 기다린다. 어둠으로 덮인 밤, 현실의 문이 닫히고, 천상으로 놓여진 계단을 올라서서, 밤이 풍기는 시원의 정적과 영원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내가 속한 우주와 우주에 놓여진 나의 관계에 대한 비의(泌意)를 캐고 싶어한다. 밤하늘 저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빛나는 별의 본질은 무엇인지, 우주는 어떻게 태어나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형성하였는지, 나는 우주의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퍼붓는 수많은 질문의 세례 속에서 신비스런 고통을 맛본다. 물론 과학의 발달은 이것들을 해명하는 근저를 마련하였지만, 어느 누가 이들에 대한 갈급의 끈을 놓아줄 것인가. 그 높고 깊고 너른 우주 바다를 누가 다 보았다 할 것인가. 누가 선명하도록 명쾌하고 활달한 답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풀지 못한 갈증을 해결해 줄 시원한 우주표 시 한잔이 도착하였다. 조연호는 '천문'에서 우주와 현실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쾌속우주비행선에 탑승한 것처럼 속도 빠른 풍성한 이미지들을 지구 안팎으로 날려보낸다. 천문학에는 천구좌표 체계가 요구되는데, 하늘에 흩어져 있는 물체들을 혼동 없이 관찰하거나 연구하기 위해서는 관찰자와 하늘 사이를 공간적으로 연결시켜 줄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동서남북이라는 방향을 지역의 위치를 표현하는데 마치 실제 하는 틀로 사용하는 것처럼, 체계 안에서 천문을 관찰하고 시로 투영해야 한다면, 조연호는 이러한 상식을 뛰어 넘는다.

천문을 직고하는 시에서 천구좌표 체계는 뒤죽박죽이며, 배치되는 이미지들의 일정한 질서 역시 없다. “하늘의 문자”와 “고대 이야기”가 떠돌고, “고전주의자로서의 나”와 “성난 가족”이 대립하며, “달 앞”과 “물 밖”이라는 무대가 섞여 있고, “웅덩이와 달라붙은 남자”와 “깊은 잠을 상속받은 사람” 등이 대본과 상관없이 등장한다. 난해하고 산만하게 엉키는 주인공과 보조배우와 부속물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다급하게 뛰어드는, 활동성 지나친 어린아이들처럼 앞 다투어 출연한다. 감독은 이러한 광경을 즐기며, 연출자는 부재중이다.
작위적이지 않다는 혐의만으로도 시 '천문'은 통쾌하다. 자의적 욕망에 인색하지 않은 무의식의 자아가, 그것도 한 뼘 백지 위가 아니라 무한 상상의 우주 속을 뛰어들어 즉흥적으로 창작해 가는 시편을 감상한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어눌한 경계를 허물고, 무한대로 이성을 무장 해제시키는 일, 즐겁다. 하여 시어의 결집들을 하나씩 분석하면서 해독하는 것은 시를 읽는 즐거움을 반감하게 한다. 조연호는 무작위로 투입한 배우들이 스스로 열연하는 광활한 공간을 제공하였을 뿐이고, 독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감상하며 나름의 미학을 펼쳐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의 연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행과 행 사이에 험악한 오해의 늪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 푸른 갈기를 휘날리며 시 연들이 질풍노도처럼 뛰어다니는지에 충분한 필연성이 성립한다. 시의 초입 “하늘의 문자”가 “아름다운 소리”로 치환되는 전경과 “고전주의자로서의 나”에게 전달되는 의문의 표출(시 생성의 비밀을 캐는 첫 열쇠가 된다)이 “달 앞의 우리”/ “물 밖에서 자기”가 지닌 배신과 혐오로 드러나는데, “내가 너를 갚아줄 것”/ “내가 너에게 겨를 묻혀줄 것”이라는 격한 감정으로의 변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에는 정황 근거가 제시되는데, 바로 “묵매(墨梅)를 치던 사람,의 별자리/ 모음이 올 자리,의 별자리/ 서로 헤어지지 않도록 별들은 내게 악취를 모아주었”기 때문이다. 시 '천문'의 여러 가지 독법 중 하나일 ‘연시’로 이 시를 읽는다면, 그리하여 떠나가 버린 상대에게 향하는 미련과 상흔을 그리고 있다면, 사랑에 대한 처절은 증오의 양상으로 발현한다. 사랑을 잃고 복귀한 일상의 “텅 빈 구멍마다 삶은 빨래를 집어넣고/ 고장 난 얼굴이 되어 아이들의 칭찬을 받”는 무용한 시간을 예상한다는 것은 애상(哀想)스런 일이 된다.

시가 중반부로 들어서면 육욕(肉慾)은 처참해진다. ‘그’가 보낸 개구리들의 “애곡(哀哭)이” 밤마다 들끓고, “나의 막대가 나에게 주는 고마운 자해 때문에/ 이불 밑이 부끄러운 줄도 지켜지는 줄도 몰랐”던 까닭이다. 여성의 자궁을 지칭하는 공간인 ‘웅덩이’와 “달라붙은 남자”에게 “이별은 보통의 추위처럼 격벽 밖에서 쓸쓸한 것들과 달라붙고 있었다. 깊은 잠을 상속받은 사람은 (자동)떨어지다, (타동)떨어지다, 이등변(二等邊)에서 얼마만큼 탈락의 넓이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자탄을 부여함으로써, 조연호는 상실의 슬픔을 최고조의 표현미학으로 등치시킨다. 바로 연이어지는 “나는 붙이면 없어지는 그런 표현이 된다”는 절창에 이르면 우주가 하얗게 표백되어지는 서늘함이 파생한다. 어떤 표현이 이처럼 절망과 이질을 함께 묶어 발화 방식으로 성립시키는가. 이어서 또 하나의 압권이 창출되는데, “머나먼 인간을 별의 이행시대라고” 부르는 “나는 소맥을 한 줌 쥐고 <그리하여, 만일>이라는 우주 한가운데 떠 있었다”는 우주 항해 고백일지의 결말이다. 능청스럽도록 부조리한 문장으로 투명한 실존 의식을 간명하게 정리해내는 언술법이 특별하다.
시에서 혼효하는 ‘나’, ‘너’, ‘그’는 그대로 ‘나’, ‘너’, ‘그’일 수 있다. 너로 인하여 고통 받는 ‘나’, 나에게 고통을 준 ‘너’, 이러한 고통을 생성한 ‘그(신)’일 터이니. 하지만 ‘나’, ‘너’, ‘그’는 다 같은 나이며, 다 다른 타자로서의 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존재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인인 사랑과 이별이라는 것도, 살며 죽는 일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리하여, 만일>이라는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한 순간의 기호일 따름이므로, 무슨 구별이 있으랴. 사랑은 이별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삶은 죽음을 반드시 동반한다. 다만 ‘그러므로’라는 인과론적 시간 속에서 배태되는 양상이 다를 뿐이고, ‘만일’이라는 가정 하에서 운명의 속성이 변하는 가상 변수가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광대무변의 우주를 바라보며 주어진 현실에서 허무한 부유자(浮游者)로 살아야만 하는 생명체의 비밀을 누설하고 있는 자! 중력으로 간신히 매달려 있는, 질량은 다르지만 동일운명체인 ‘나’와 ‘별들’의 관계를 날카로운 직관으로 노래하는 자! 조연호 시인의 별자리를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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