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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긴 분량의 시, 산문시와 자폐적인 시 쓰기를 벗어나라

by 솔 체 2015. 2. 2.

긴 분량의 시, 산문시와 자폐적인 시 쓰기를 벗어나라

―'중앙신인문학상(2007년 여름)의 심사평'을 다시 보며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가 30명이었다.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보통 본심에는 10명 안팎이 오른다. 예심 심사위원들은 좋은 작품이 많아서 행복했는지 모르지만, 본심 위원들은 고통스러웠다. 30명의 개성이 아니라 4∼5개의 유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응모작들은 차이보다는 유사성이 먼저 눈에 띄었다.


 우선 작품의 길이와 형태가 거의 같았다. 행을 구분한 시의 경우, 대부분 A4 용지 한 장을 가득 채우는 분량이었다. 또 산문시가 압도적이었다. 어떤 응모자는 응모작 7편이 모두 산문시였다. 시의 길이와 형태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내용적으로도 많이 겹쳤다. 흔들리는 가족, 이주 노동자에 대한 연민, 외국 여행(주로 유럽) 체험, 신체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해석 등이 자주 노출되었다. 두 응모자가 ‘노르웨이 숲’이란 같은 제목을 달기도 했다.


 응모자들은 저마다 뛰어난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초점이나 색채, 구도, 즉 미장센은 거의 완벽했다. 하지만 그 대상을 왜 ‘촬영’하는 것인지, 또 그렇게 촬영하고 편집한 ‘화면’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감독이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가 있으니까 찍는 것처럼 보였다. 예비 시인들은 시는 오로지 이미지의 배열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시에서 이미지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지만으로는 시가 되기 어렵다. 이미지 과잉은 곧 메시지(의미)의 결핍이다. 시에서(삶에서도 그렇지만), 과잉과 결핍은 결코 미덕일 수가 없다. 시 역시 ‘타인에게 말걸기’라면, 이미지 과잉으로는 독자에게 말을 걸 수가 없다. 더구나 저 독자가 시대와 문명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하루빨리 자폐적인 시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셋이었다. 김학중씨의 ‘저니 맨’, 박은지씨의 ‘열쇠, 도장’ , 그리고 방수진씨의 ‘창고대(大)개방’. 김학중씨의 ‘저니 맨’은 삶의 한 국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선이 돋보였다. 하지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해 아쉬웠다.


  박은지씨의 ‘열쇠, 도장’과 방수진씨의 ‘창고대개방’ 두 작품 중에서 당선작을 골라야 했다. 문장은 박씨가 세련되었으나, 시적 대상을 장악하는 힘이나 시의 구성에서 방씨가 조금 앞서 있었다. ‘조금’이라는 표현에 유의하시길 바란다.


  김학중·박은지씨는 조만간 다른 경로를 통해 시인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부디 등단 시기나 절차에 과민하지 않았으면 한다. 문제는 데뷔가 아니고, 데뷔 이후다. 시인이 된 이후, 어떤 시를 쓰느냐가 문제다. 당선자 방수진씨는 오늘 아침 활자화된 당선소감(초심!)을 평생 잊지 말기를 바란다.


◆심사위원=이문재·장석남(대표집필 이문재)
◆예심위원=강정·이장욱·김선우

 

* 최종심에 오른 30명
가  영, 강한기, 김관용, 김요반, 김학중, 김  현, 김희정, 문계현, 박성준, 박수지, 박은지, 박진섭, 박현진, 방수진, 손  미, 송섬별, 신민철, 신지혜, 신  희, 심정아, 유병록, 이규진, 이  해, 임경섭, 장갑식, 조윤수, 최수연, 최응언, 최호민, 황윤결

 

     ( 박성준은 2009년 봄호 《문학과사회》, 최수연은 2009년 봄호 《시안》신인상에 각각 당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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