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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09년 제14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작 -폭설 외 4편/ 위선환

by 솔 체 2015.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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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외 4편/ 위선환


몸속에 가시뼈를 키우는 물고기가 자라나는 가시뼈에 속살이 찔리는 첫째 풍경 속에서는
몸속에 두 귀를 묻어버린 물고기의 몸속보다 깊은 적막을, 적막하므로 무한한 그 깊이를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눈 뜨고 처음 내다본 앞 바다에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둘째 풍경 속에서는
야윈 손이 반음씩 낮은 음을 짚어가는 저녁 무렵에 어둑하게 어스름이 깔리는 音調를
새들은 어둔 하늘로 날고 살 속에서는 신열을 앓는 뼈가 사뭇 떠는 오한을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잠깐씩 돌아다본 들판에 돌아다볼 때마다 눈발이 굵어지는 셋째 풍경 속에서는
눈까풀에 점점이 점 찍힌 점무늬 아래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반점들의 하염없는 나부낌을
아득하게 깊어진 눈구멍 속에서 속날개를 털며 자잘하게 날갯짓도 하는 설렘을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물굽이와 들판과 나를 덮고 묻는 눈발이 자욱하게 쏟아지는 마지막 풍경 속에서는
천 마리씩 떨어지는 여러 무리 새떼들이 바짝 마른 가슴팍을 땅바닥에 부딪치며 몸 부수는 저것이 폭설인 것을
내리 꽂고 혹은 치솟는 만 마리 물고기들은 물고기들끼리 부딪쳐서 산산조각 나는 것 또한
폭설인 것을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았다. 깜깜하게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누구인가 그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얼음꽃


죽음이 지루했으므로 그는 뒤채며 몸에 감긴 수의를 벗었는데

살 까풀에 내비치는 속살이 흰 것 하며, 옆구리와 오금에 드리운 살 그늘이 연한 것 하며, 사타구니와 손등에서 터럭 자라는 것 하며, 손톱 발톱의 각질이 투명한 것 하며

눈 감은 지 몇 해째인데 아직 다 죽지 못한 안타까움까지,

그렇게 간절한 것 말고도 몸이 휘도록 사무쳤던 것은

처음으로 그가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숙이고, 허리 꺾어서 바짝 귀 대고...., 그러나

들리는 것은 이빨 자라는 소리, 뿐이었다 차고 단단하고 잇몸이 얼어붙는

이빨 끝이 시린, 이 고요



가슴을 때리다


바위에 이마 대고 오래 울다 간 사람이 있다. 바위가 젖어 있다.
바람에 등 대고 서서 등 뒤가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다.
등판에는 바람 무늬가, 등덜미에는 바람의 잇자국이 찍힌 사람이 있다.
무릎걸음으로 걸어서 닿은 사람 있다. 물 바닥에 무릎 꿇은 사람 있다.
두 손바닥 포개 짚고 엎드려서 이마를 댔던 자국이 물에, 우묵하다.
바짝 마주 대고 마구 누구를 때렸던가. 움켜쥔 주먹이 멍들었다.



한 잎


툭, 잎 떨어지는 소리 들리고 한 나무가 허리를 굽혔고 잎 떨어뜨린 가지를 아래로 숙였고

굽은 한 나무의 숙은 가지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딱, 한 잎이 내려다보이고

굽은 한 나무의 숙은 가지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딱, 한 잎의 더 아래로 느리게 지나가고 있는 한 사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한 사람이 느리게 지나간 다음에는 인적 끊겼고, 인적 없는 나무 아래는 빈 것이다, 그렇게 말씀한 대로

굽은 한 나무의 빈 아래의 더 아래가 한없이 빈 저어 아래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한없이 빈 저어 아래로 한없이 떨어져 내려가는 딱, 한 잎이 가뭇가뭇 내려다보이고



낡음에 대하여


낡음 때문이다. 눈 내리는 겨울이고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다시 겨울이 오고, 눈은 아직 내리는 것,

낡음 때문이다. 살갗의 무늬를 밀며 바람이 지나가는 것, 온 몸으로 바람의 무늬가 밀리는 것, 서로 닳아지며 살 비비는 것,

낡음 때문이다. 자주 목쉬는 것, 더 자주 날 저무는 것, 또 물 위에 눕는 것,

낡음 때문이다. 놀 붉고 이마 붉는 것, 못 박는 소리 들리는 것, 사람이 박히는지 걱정하는 것,

낡음 때문이다. 구부리고 이름 부르는 것, 땅바닥에 얼굴 부딪치는 것,

낡음 때문이다. 돌아오는 사람이 야위는 것, 느린 그림자를 끌며 늦게 돌아오는 것,

낡음 때문이다. 추운 날은 반드시 등이 어는 것,

살 벗고 웅크리고 잠에 드는 것, 자면서 뼈가 비는 것, 빈 눈확에 어둠이 고이는 것, 낡음 때문이다.


[현대시학작품상 심사평]

조밀한 침묵의 외침


의논 끝에 세 분의 시인으로 범위를 좁혔다. 세 분의 시인은 뜨겁게 달아오른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서 각각의 세계를 독특한 언어감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한편 무엇보다 구체적이라는 데서, 감각을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사건의 윤곽을 분명하게 잡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세 시인은 일치하고 있었다.
세계는 그를 흡입하려는 사람에게 멈칫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빨려든다. 빨려가면서 세계는 자신의 주름을 편다. 이때 희미하고 성글었던 어떤 조짐들이 조밀해지면서 존재론적 위상을 얻는다. 가령 진은영의 경우, <죽은 가지 위에 밤새우는 것들이 있다/그 울음이 비에 젖은 속옷처럼 온 몸에 달라 붙>(「있다」)는 것으로 어떤 내밀함이 착근하는가 하면, 조정인의 경우는 <소녀를 만나러 가는 소년의 바스락대는 그림자>(「홍옥」)에서처럼 바스락거림, 그 자체가 오롯하게 존재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이렇듯 두 여성 시인은 주름 갈피에 내속된 사건들을 펼쳐 세계의 외연을 경이롭게 확장하는데 능란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었다.(물론 각각의 목소리를 유지하며)
위선환의 경우는 어떤 거역할 수 없는 사실이 <정녕 있다>라는 감각을 보다 물컹하게, 비장하게 부려준다. 농염해진 삶의 감각이 꽂히는 그 현장마다 흐르는 진액을 맛보는 느낌은 다소 무거웠지만 삶의 질문에 붙들리는 맛이 만만치 않아 수상자로 지목하는데 망설이지 않고 합의하였다. 그의 시편들 안에서 극도로 조밀해진 침묵의 외침을 들으며 독자는 한 발 내딛는 걸음의 무게를 숙고하게 될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읽는 유용함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굽은 한 나무의 숙은 가지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딱, 한 잎의 더 아래로 느리게 지나가고 있는 한 사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한 잎」)에서처럼 사라짐의 사건에 주목하며 <사라짐>의 질량을 조밀하게 모으고 그 벡터를 따라가는 서늘한 시선의 힘, <낡음 때문이다. 놀 붉고 이마 붉는 것, 못박는 소리 들리는 것, 사람이 박히는지 걱정하는 것> (「낡음에 대하여」)이라고 <낡음>의 그늘을 넉넉하게 펼치며 사람들을 들이는 그의 시편들은 언어운용의 맛과 두터운 위무의 손 맛을 동시에 베풀며 그 위의를 마련하고 있었다.
오랜 시업의 결실을 감축드린다.
-한영옥(시인)



위선환 시학의 형이상학적 전율


제14회 <현대시학작품상> 후보로는 손택수, 신용목, 심언주, 우대식, 위선환, 이영광, 조정인, 진은영, 최금진 시인(가나다순)이 올라와 있었다. 등단 10년 내외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현대시학』 출신 시인들의 천거로 이루어진 이 명단은, 최근 우리 시단에서 가장 왕성하고 개성적인 시작 활동을 보여준 시인들을 망라한 것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가운데 나는 위선환, 조정인, 진은영 시인의 성취에 각별히 주목하였다.
손택수 시인과 우대식 시인은 이번 후보작들이 그동안 그들이 보여준 가편들에 비해 성취가 모자라다고 보았고, 신용목, 이영광, 최금진 시인의 경우는 근자의 유력 문학상 수상을 고려하였다. 심언주 시인의 경우 이력 축적이 더 이루어진 다음에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다른 심사위원 분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위선환 시인과 진은영 시인으로 수상 후보 범위가 좁혀졌다.

진은영은 세상에 대한 <슬픔>을 시의 기조음으로 하면서도, 그 <슬픔>의 연원을 선험적 불가항력성에서 찾기보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구체적 정황들에서 그 근거의 물질성을 찾는 예민하고도 폭이 넓은 감각을 갖춘 시인이다. 또한 그녀는 감각의 민활함과 다양함을 채집하면서도 그것을 인간 욕망의 밑바닥에 가 닿게 하는 기막힌 능력을 지닌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에 수상 후보작으로 올라온 작품들이 그녀 시편의 최상급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을 그것들대로, 진은영 시편의 문법 이를테면 합리성의 외관을 지닌 것들에 대해 힘을 보태지 않고 그것들이 균열하는 모습을 적출하고 폭로하고 감각화하는 데 매진하는 에너지를 한결같이 보여주었다. 이제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시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위선환은 서정시가 지녀야 할 시간과 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한결같은 유장한 리듬 속에서 구축해온 시인이다. 이번 수상작들은 그동안 그가 보여온 균질적 세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는데, 가령 구체적 감각의 풍경에서 적막의 깊이를 상상하고 그것을 떨리는 목소리로 담고 있는 그의 품과 격은 참으로 견고하고 외따롭게 느껴졌다. 이때의 떨림을 우리는 위선환 시학의 <형이상학적 전율>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처럼 그가 노래하는 풍경들은, 어떤 정신적 차원의 지향과 등가 관계를 형성하면서, 삶의 신비로움과 역동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감각의 물질성과 그것을 시원의 보편성으로 사유하려는 힘이 동시에 표출되는 것이다. 또한 위선환 시편에는 자기표현을 극대화하려는 은유적 욕망을 경계하면서 사물과 시간을 결합하려는 이중 소묘의 기법이 잘 드러난다. 그 풍경은 일종의 영적 에너지를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존재자들의 것이고, 그 존재자들의 威儀를 통해 시인의 감각은 어떤 계시적 차원에까지 이르게 된다. 위선환 시의 독자성은 이러한 힘에서 온다.

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위선환 시인의 지속적이고 균질적인 창작 과정에 <현대시학작품상>이라는 격려가 얹혀져야 마땅하다고 기꺼이 합의하였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도 더욱 젊고 깊은 위선환 시편을 만나게 될 것을 희원해본다.
-유성호(문학평론가)



사물의 축제 속으로 인도하는 상상력의 직조술


시를 감별하는 자리가 아니라 감응의 행복을 누린 자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제14회 현대시학작품상 심사 과정은 즐거웠다. 본심에 오른 아홉 시인들의 작품은 한결같이 뛰어나서 우열을 가리기에는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내게는 수상작 외에도 본심에 오른 손택수, 신용목, 심언주, 우대식, 이영광, 조정인, 진은영, 최금진의 시에 깊이 공감하고 동참하는 자리였다.
논의 결과 위선환 시인의 「폭설」 외 4편이 이견없이 올해 현대시학작품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위선환 시인이 고귀한 정신의 뼈로 쌓아올린 언어의 집은, 당연하게도 비좁은 작은 집이어서 애초부터 환대 따위는 바라지 않아도 되는, 오로지 휴식만이 잔치여서 마음껏 훌륭한 만족을 누릴 수 있었다. 자연에게 쉽사리 경배 드리지 않고 탄력적인 언어의 운용을 통해 사물의 축제 속으로 인도하는 시인의 상상력에서 우리는 내리는 눈발 하나가 별의 운행에 못지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륜의 깊이와 상상력이 만나 일으키는 언어의 탄력성은 일상의 작은 체험 하나가 어떻게 드높은 시의 별자리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노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섬세하게 소멸하는 것에 예리한 감각을 부여하며 풍경의 깊이를 드러내는 언어의 직조술은 나를 포함한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진은영 시인이 수상자가 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진은영 시인의 시는 읽을 때마다 깊은 맛이 우러난다. 나도 그의 독자들처럼 그의 시편들에서 우리 시의 또 하나의 자오선을 발견하게 된다. 아포리즘적인 수사적 전위들 틈에서 그의 시편들은 고통스런 감각이 참신한 노래로 승화되는 오롯한 시적 체험을 선물한다. 특히 「뱀 이야기」나 「있다」의 시편들에서 감각을 넘어서는 무언가 원형적인 것이 발하는 매혹은 쉽사리 놓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조정인 시인의 시편들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자신의 시세계를 깊이있게 확장하고 있는 모습에서 새로운 힘을 느꼈다. 일상을 예민하게 채집하는 응집된 언어를 시인은 겸손하게 <추운 불꽃>이라 명명하고 있지만, 그 곁에서 <곁불>을 쬐는 행복은 그의 시가 아니면 누리기 어려웠으리라.
- 박형준(시인)

 

 


[수상소감]

내 이름을 지어 부르는 소리

위 선 환


내가 지쳐 있구나, 하늘빛이며 들빛이며 물빛이 한창 짙푸를 남쪽이 좋을 것이다. 이것저것 다 잊고 장흥에 내려가서 며칠 쉬며 탐진강 갓길을 걷고 돌아오자, 얼마 전부터인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현대시학작품상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순서 없이 떠오릅니다. 배려하고 염려하고 챙겨준 것일 것입니다. 잘 쓰라고 격려해주는 것일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더욱 두려워하며 한층 더 긴장하고 쓰겠습니다. 그동안 내 시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작품을 심사하신 선생님들은 물론 이 상에 관계하신 여러 분들께도 진심으로, 거듭해서 감사합니다.

강을 건너간 나무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새들이 흔들어두고 떠난 빈 가지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숲 머리에서 날리고 흙바닥에 떨어져서 쌓이고 나무뿌리를 덮는 잎사귀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하나인 나무와 다른 많은 나무들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나무인 나무와 온갖 것인 나무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하늘 천장에 부딪치고 있는 큰 돌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한 밤에도 눈을 뜨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곤 하던 돌멩이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흙먼지 가라앉은 흙바닥에서 뾰족하게 내민 돌부리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하나인 돌과 다른 많은 돌들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돌인 돌과 온갖 것인 돌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가시덤불을 뚫고 드나들어서 몸 안에 가시가 꽉 찬 새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자갈돌을 내뱉어 버릇하더니 제가 뱉은 자갈더미에 파묻히고 만 새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내 겨드랑이에다 날개뼈의 둥근 돌기를 묻어둔 새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하나인 새와 다른 많은 새들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새인 새와 온갖 것인 새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섬에 대하여도, 바다와 강과 물의 흐름에 대하여도, 하늘에 대하여도, 빗발과 눈발과 구름과 안개와 그늘과 빛과 어둠에 대하여도, 바람과 결과 무늬와 소리와 색채에 대하여도, 늘 안타깝고 가여웠던 언어에 대하여도, 그리고 다른 많은 온갖 것들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더불어서, 혹은 덧붙여서, 나무와 돌멩이와 새와 섬과 바다와 강과 하늘과 빗발과 눈발과 구름과 안개와 그늘과 빛과 어둠과 바람과 결과 무늬와 소리와 색채와 언어와 그리고 다른 많은 온갖 것들이 각각으로 나뉘어 있기도, 혹은 무리를 만들며 섞이어 있기도, 또는 통째로 하나로 있기도 함으로써, 기실은 낱낱이자 일체인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실상이란 무엇이겠는가? 그야말로 실체란 무엇이겠는가? 그런즉 살과 뼈로 이루어진 생체란 또 무엇이겠는가, 또한 몸이고 物이고 상징이 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근원이 되고 본질이 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어떻게 있는 것이고 무엇으로 있는 것이겠는가, 하물며 내가 있는 지금은 여기는 또 어떠하고 과연 무엇이겠는가,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의 나의 물음이 쭉 그러했다고, 그러므로 나의 물음은 먼 굽이를 돌아서 흐르고 있는 강물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연작시로 써오고 있는 ‘탐진강’의 흐름이 그러하고, 우기의 며칠 동안 빗발에 젖고 있던 그 강의 물굽이가 그러하고, 겨울날 그 강 건너 들판으로 몰려오던 눈발이 그러하고, 그 강물에 비쳐 있는 하늘이며, 그 하늘에 비쳐 있는 섬이며 바다며 바람이며 결과 무늬와 소리와 색채들이며, 그 강의 풍경 속에 전개되어 있는 구름과 안개와 나무와 그늘과 빛과 어둠과 돌과 새와 언어와 다른 많은 온갖 것들이 다 그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프고 야위고 힘들 때마다 나는 강을 찾아 가는 것이고, 그 강에 가서 강을 바라볼 때마다 강 건너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내 이름을 지어 부르는 먼 목소리를 듣곤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일 또 찾아가면 누구인가 그가 그 강의 건너편에 서 있어서 또 내 이름을 지어 불러줄려는지....,그때 나는 또 떨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할 것인지를, 한참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 더 하겠습니다. 비록 안간힘이더라도, 혹은 안간힘보다 훨씬 힘이 들더라도, 나는 젊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강조해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젊은 시를 쓰므로, 또는 젊은 시를 쓰는, 젊은 시인'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한 평론가가 내게 대하여 한 말을 기억하겠습니다,
“그가 환갑이 다 된 나이로 뒤늦게 팬 끝을 다시 갈기 시작할 때....., 시단에 낯을 익히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나이와 연조가 일치하지 않을 때 치러야 할 고통은 글 쓰는 사람들의 세계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스무 살은 서른 살을 예견하게 하고, 서른 살을 마흔 살을 설명해준다. 그 성장의 이력도 행적도 알려지지 않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이 불편함이 비단 사람들과의 관계에만 국한된다고 할 수도 없다. 뒤늦은 행보는 그의 글쓰기를 또한 제약하기 마련이다. 젊은 시인의 모색과 망설임은 그의 진지함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어디에도 매혹됨이 없이 귀가 순해져야 할 나이에 첫 시집을 꾸리는 시인에게는 길을 알고도 모르는 척 헤매야 할 시간도 기회도 없다”

=수상시인이 쓴 시인의 연보=

1941년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옥동마을에서 태어나다.
1955년 장흥중고등학교 교지『억불』창간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시를 쓰기 시작하다.
1960년 용아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낯을 내밀다. 이후 1969년까지 시를 썼으나 발표지면을 얻지 못하여 작품 활동을 거의 못하다.
1969년 시「성 예양읍에서 시 끊기」를 마지막으로 시작노트를 불태우고, 이후 30년간 시를 끊다.
1999년 시「사월」을 시작으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다.
2001년 첫 시집『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를 발간하다. 『현대시』9월호에「교외에서」외 2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다.
2003년 둘째 시집『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를 발간하다.
2007년 셋째 시집『새떼를 베끼다』를 발간하다.
2008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하다.
2009년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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