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예 하반기 시 당선작
담배
천지경
1
천둥 번개가 극성스러운 날,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그렁그렁 고인 눈물 감추려고 두 눈을 깜박이며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습니다. 구멍 뚫린 가슴에 습기 듬뿍 스민 장마철, 아버지가 둘째 오빠의 시신을 지게에 지고 나간 날부터 어머니는 담배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막바지에 이른 죽이 빠글빠글 끓는 듯한 애달픈 가슴도 담배 한 모금에 차분히 가라앉곤 했다네요. 우등생이었다는 둘째 오빠는 담배 연기가 되어 어머니 가슴속을 들락거리며 수십 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2
아버지 무덤가에서 어머니가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당신이 한 모금 빤 후 상석 위에 올려놓습니다. 아버지 묻히신지 두 철이 지났는데도 떼는 입지 않고 잡풀만 무성하게 돋아납니다. 장맛비에 물씬 자란 쑥대며 엉겅퀴는 어머니 억센 손에 머리채 휘어 잡혀도 좀체 뽑히지 않습니다. 이승과 저승길을 끊듯 어머니는 매정스럽게 풀들을 뽑고 뜯고 합니다. 잡풀 한 움큼 뽑을 때마다 어머니 악문 입술이 들썩입니다. 고수레 음식을 탐내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참 청승맞게 들려옵니다. 어머니가 다시 담배를 한 대 꺼내 뭅니다. 무덤 머리맡에 핀 쑥부쟁이 위로 담배 연기가 날아갑니다. 조금 전 어머니가 끊어내지 못한 쑥부쟁이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야생화입니다. 이제 아버지도 어머니 가슴속을 들락거리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새벽 출근
관절의 통증이 밤잠을 쫓더니
오늘 새벽길은 더 캄캄하다
우주 사우나 지구 이용실 뱅뱅이가
슈퍼 유리문을 붙들고 울고 있다
너무 어지러워, 너무 어지러워하며
고달픈 팔자를 호소하고 있다
어디선가 숨 가쁘게 달려와
냉소를 남기고 사라지는 택시 한 대
마른 나뭇잎 몸 뒤척임에 곤두서는 귀
검은 부직포를 입은 길쭉한 것이 인도에 누워 있다
순간, 귀신 바람이 머리 끄덩이를 잡아당긴다
벌떡 일어설 것 같은 저 관은
어느 고단한 밥줄을 위한 노점상 갈무리
바쁜 마음 앞서 뛰는 그림자
옆을 노려보며 뒤따르는 그림자
모두 가로등 때문에 생긴 내 것인데도
등줄기를 섬뜩하게 잡아당긴다
몇 년 전 만났던 강도 놈도
그림자부터 앞세워 칼을 들이댔다
언제쯤 이 무서운 출근을 멈출 수 있을까
궁리하며 발걸음 재촉하는데
맞은편에서 자전거 페달 설렁설렁 밟고 오는 남자
고국이 그리운 외국인 노동자인가
제 나라 말로 목청껏 노래 부르며 지나간다
흘끔흘끔 내 눈치 보며
노점
멀어졌다 가까와졌다
몇 시간째 동네를 도는 목 쉰 소리
속이 벌겋게 탄 하늘 등에 지고
동네 약국 귀퉁이에 전을 펼친 옷 가게
' 폭탄세일' 문구 머리에 두른 꽃미남 마네킹
멋적은 미소에 잠바 하나 걸치고 있다
행인이 뜸할 때는 가끔씩 지나는 바람
텅 빈 소매 툭툭 쳐 주기도 한다
봄꽃 잇따라 핀지 여러 날,
겨울 잠바 벗지 못한 남편 모습 떠올라
노점 앞에 앉아본다
이름 있던 회사의 부도 제품이란
측은한 상술일 뿐인가
정확한 치수 없는 매끄럽지 않은 촉감의 옷들
들었던 잠바 내려놓는 손길 붙드는
휑한 눈의 노점 주인
저녁은 먹었을까?
다시 쭈그리고 앉아 잠바를 고른다
어떤 색이 좋을까
밝은 색을 입히면 그의 길이 환해 질라나
베이지 잠바 품에 안고 일어서니
사흘 전 개업한 치킨 집 입간판
불이 마악 켜지고 있다.
비상등
밤안개가 아파트 계단까지 스며있다
야근의 피로가 누적된 다리로
한 층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지친 눈 깨워 주는 사람
환한 세상 향해 비상을 꿈꾸며 달리지만
한 번도 그 문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
유심히 나를 내려다본다
노름꾼 아버지 횡포에 시달리던 어머니
충혈된 눈동자로 바라본 세상의 불빛이 저랬을까?
마음은 늘 비상등 속 저 사람처럼
계단을 향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자식들 가파른 계단 내딛는 걸음 지켰을
어머니 부릅뜬 눈, 저 비상구 불빛
두꺼운 어둠 물리치고 있다
이제 집 밖이 무섭다는 칠순의 어머니
침침한 눈으로 남은 세상 더듬어간다
내 밤 눈 어두운 계단 길 밝혀 주는 비상등
귀가 시간이 늦을수록 불빛 더욱 환하다
지겨운 풍경
사방이 화물차로 둘러 싸인 사계절식당에는
낡은 덤프트럭의 경적 같은 목청을 가진 단골이 많다
술에 취하면 두 다리를 잃은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박씨
주먹계의 무용담을 들먹이며 식탁을 내리치는 왕씨
터미널 다방 이양의 궁둥이를 슬쩍 슬쩍 건드리는 김씨
'에그 지겨운 세상'을 입에 달고 사는 완사댁은
개수대 빡빡 문지르며 주정하는 단골들 흘끔거린다
무적(無敵 )바퀴 허기로 부풀리며 전국을 돌고도
번번이 흙먼지만 싣고 온 차량들
역마살 한탄하며 또 다시 순번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에 지친 몇몇 기사의 아내는 집을 나갔고
때갈 좋고 용량 넓은 신도시로 떠난 기사도 여럿 있다
XX운송 간판 줄지어 걸려 있는 화물터미널 대기실엔
목청만 화투패처럼 캉캉 튀는 초췌한 얼굴의 기사들
패가 좋은 날은 더러 대박을 꿈꾸기도 한다
공치는 날은 덤프트럭 무게 같은 얼굴로
사천 원짜리 한 끼 밥도 버거워 라면을 찾는 사람들
손톱눈에 찍힌 상처 같은 박씨의 아픔을 닮은 오후가
꾸역꾸역 목젖을 움직이는 창문 너머로
쉰이 넘어도 집 한 채 지니지 못한
텅, 텅, 빈 바람만 죽자고 들어온다
빈 그릇 수거해 가는 완사댁 등허리 들추는 시퍼런 바람
또 누가 빈 차로 왔나 보다
집채만한 경적이 지루한 오후를 덮친다
천지경 (본명 천선자) 1963년 진주 출생 2006년 근로자 문학제 시부 동상 수상 현재 문해문학 동인.
진주 화요문학회 회원, 진주 제일병원 장례식장 근무.
본심 심사위원 : 이경철 (글), 공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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