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의 「마리안느 페이스풀」감상 / 오정국
마리안느 페이스풀
강인한
간절하면 이루어지나 봐요, 마리안느
미안해요 당신을 간밤 꿈속에서 만났어요
나랑 둘이서 피나콜라다를 마시기 위해
구석진 카페에 앉았는데
안타깝게도 어둠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그 어둑한 두 그림자가 졸아들어
촉촉한 슬픔의 촉을 올려 오늘 내 가슴 속 어딘가
키 작은 제라늄 꽃나무로 돋아나고 있어요
당신은 낯선 곳에 가서도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꽃들의 하염없이 작은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착한 여인, 깊은 눈빛 아름다운 여인
나는 당신의 발가벗은 몸에 장미 꽃다발을 바쳐요
장미꽃으로 앙증맞은 당신의 가슴을
장미꽃으로 간지럼을 기다리는 당신의 배를
장미꽃으로 당신의 허벅지를 다리를
가볍게 가볍게 두드려요
나를 보는 당신은 가을하늘 새털구름, 셀로판지 같은
웃음을 던져주고
마리안느, 당신의 깊은 눈동자 속에 장미꽃
장미꽃 한 잎의 꽃잎에 작은 물방울
물방울에 갇히고 마는 오토바이 한 대
지금 내 귓속에는 작은 새처럼
당신이 날아오는 안개 낀 새벽
오토바이의 길고 긴 폭음이 눈부신 금빛으로 붕붕거려요
이제 턱 밑에서부터 지퍼를 내가 열게요
신비로운 당신의 가슴골과
비밀스레 떨고 있는 아랫배까지 열어갈게요
검정 가죽슈트를 한숨에 열어서 당신의 흰 알맹이를
꺼낼 거여요
그리하여 내 입에 머금은 피나콜라다를
당신에게 부어주고 싶어요, 마리안느
예쁜 제라늄 화분에 물을 주듯이
성당의 성수대에 성수를 흘려 넣듯이
———
* 마리안느 페이스풀 : 망디아르그의 소설 「오토바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 알랭 들롱과 함께 출연한 영국 가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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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탐닉인가, 허무인가? 이 시에는 에로스적 열망이 가득하다. 꿈에서라도 만나고픈 여인, 이 시에 등장하는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낯선 곳에 가서도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꽃들의 하염없이 작은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착한 여인”이지만, 폭주족처럼 ‘오토바이의 길고 긴 폭음’과 함께 ‘안개 낀 새벽’에 ‘나’를 향해 날아온다. 마리안느가 주연한 영화 「오토바이」의 그 여자다.
이 영화는 여주인공인 이십대 여성이 남편이 잠든 새벽에 이탈리아제 단기통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아우토반을 달리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보여준다. 그녀는 검은 가죽슈트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애인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간다.
시인은 이 영화의 마리안느를 시에 등장시켜, 영화가 그러하듯 비련의 사랑을 담아내는데, 정작 주목되는 것은 ‘당신의 발가벗은 몸에 장미 꽃다발’을 바치는, 제의적 행위이다. 이때의 ‘발가벗은 몸’이란 영화에서처럼 일체의 형식과 제약을 거부하는 ‘알몸의 에로스’를 말해주고 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벌거벗은 몸에 검정 슈트만 걸치고 애인을 향하여 달려가지만(실제로 마리안느도 전성기 때 믹 재거를 비롯해 롤링 스톤즈 등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과 벌인 별장 파티에 알몸으로 참석한다. 그녀는 60년대 최고의 팝스타였지만 그것이 공개되면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고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이 ‘벌거벗음’은 ‘검정 슈트’에 가려진 ‘벌거벗음’이며, ‘검정 슈트’에 갇혀 있는 ‘벌거벗음’이다.
따라서 시인은 시의 화자로 하여금 가죽슈트의 ‘지퍼’를 열고, 나아가 ‘가슴골’과 ‘아랫배’까지 열도록 한다. 그리하여, 아니 그럭해야만 ‘내’가 머금은 달콤한 칵테일을 ‘당신’에게 부어줄 수 있다는 게 시인의 전언(傳言)이다.
게다가, 시인은 이런 행위야말로 ‘제라늄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며 ‘성당의 성수대에 성수를 흘려 넣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벌거벗은 육체의 교감에는 ‘聖’과 ‘俗’이 따로 없다는 말인가. ‘聖’과 ‘俗’은 언제나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럴 것이다. 일란성 쌍생아처럼.
(오정국)
—「에로스와 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9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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