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의 「우듬지」감상 / 허수경
우듬지
이규리
나무 밑동을 안았는데 왜 우듬지가 먼저 기척을 하는지
언젠가 당신이 내 손을 잡았을 때 내게도 흔들리는 우듬지가 있음을 알았다
빠른 속도로 번지는 노을, 그 흥건한 물에 한철 밥 말아 먹었다 너무 뜨겁거나 매웠지만
상처라도 좋아라 물집 터진 진물에서 박하 냄새 맡던 저녁, 내 속으로 한 함지 되새 떼 쏟아져 날았다
손닿지 않는 곳에 뭘 두었니? 당신을 숨긴 우듬지엔 만질 수 없는 새소리만 남아
어느덧 말라버린 무화과 꼭지처럼, 살이 쏙 내린 잔뼈로 이름만 얽어놓은 그곳, 닿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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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사랑을 할 때 저럴 것이다. 밑동을 안았는데 나무 꼭대기의 가지가 가늘게 떨리는 저 순간. 사랑인 것이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내 속에도 '흔들리는 우듬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저 지독한 순간.
'너무 뜨겁거나 매'운 그 순간, 상처의 진물에서도 '박하 냄새'가 나고 '내 속에서 한 함지 되새 떼가 쏟아져 날'아가는 그 순간. 그러나, 사랑의 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의 촉수는 아직도 날카롭게 서있는데 벌써 그 순간은 '만질 수 없는 새소리'로만 남아있다.
사랑의 순간은 그런 것인가, 고 묻는다. 전율의 순간, 낮밤이 바뀌던 순간, 세상의 환한 꿈이란 꿈이 한꺼번에 폭죽을 터뜨리던 순간. 그래서 사랑이 지나간 자리가 아무리 참혹해도 세월의 유랑자처럼 우리는 사랑의 순간 속을 정처없이 걸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허수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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