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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10년 봄호 <시와세계>신인 당선작- 양승림

by 솔 체 2015. 3. 30.

철학은 돼지다 외 4편

 

양승림

 

 

한 음식점 앞에 번호표를 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저렇게 나도 죽은 짐승의 내장 한 그릇에 열광해 봤으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보쌈을 시켰는데

족발이 나오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숟가락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만 입을 실룩거리며

침묵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화가 나기엔 집 간판은 너무 늙었고 어쩌면 우리는

돼지만큼 알지 못한다

 

그저 누군가 대신 보쌈을 먹어주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집 족발은 펜촉을 닮았고 역겨운 계피향이 난다

잡내를 잡으려다 결국 또 다른 잡내를 끌어들인 셈이다

 

족발과 우리들 사이에 끼어든 새우젓처럼 우리들의

맨 끝줄이 가마솥 안에서 물렁물렁 익어가고 있을 뿐이다.

 

 

 

노란 민들레

 

 

  아이 둘을 지웠다 내 뱃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오르가즘이었으니까 그의 달콤함 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 애시당초 우리의 관계는 미국과 어느 아프리카 오지의 약소국가와 같은 것이었으니까 남자들이란 족속은 아예 손잡이 따위는 없는 거니까 현재 나는 폐경이 진행 중이고 사랑 나부랭이나 까발릴 나이가 아니니까 이미 나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고 요즘 그 아이들도 수음을 하는 것 같으니까 차라리 담배를 피워보라고 권해보지만 밤이면 아이들도 여자 생각이 나는 것 같으니까 어제는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친자확인소송 중이야 돈도 많이 들고 나는 너무 지쳤어 차라리 이 허접쓰레기 같은 유전자를 조작하고 싶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태어난 지 두 달만에 섹스도 하고 럭비도 하고, 두보처럼 시도 쓰고 난 두보의 雪江이 좋아 그렇지만 기형도는 아냐 시도 좋고 사람도 좋지만 난 그가 선택한 극장이 싫어 처음엔 타살일 거라고도 생각했었어 그래야 세상이 재밌거든

 

  참, 마지막으로 생리한 게 언제라고 그랬지? 그가 바지를 올리며 물었다 나는 힘껏, 더러운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나의 여윈 맨발을 끌어들이며

  노란 민들레 필 때

 

 

 

피카소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일그러진 얼굴들, 수몰지의 물고기처럼, 나는 지렁이에 대해 민감하다, 필레를 떠서 튀겨낸 월 아이!

 

  쌀쌀한 오월, 미소는 늘 진동이 심하다, 라지 사이즈의 커피, 점점 대범해지는 커피숍, 역시 어색하다, 그 끝을 조금씩 드러내는 절벽, 메트리스 같은 평화, 모두, 바보 같은 가설이다, 교정을 보지 않은 책처럼, 나는, 투덜거린다,

 

  라면과 김치냄새가 뒤섞인 곳, 교회의 지하실, 사랑은 매연이 심하고 햇볕은 늘 무례하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배쓰와 머시키, 깨끗하고 하얗고 풍성한 구름의 반대편에서 보도블럭이 마른다

 

  웅성거리는 문명, 몇 명의 전화번호는 단일하다, 미끼처럼, 책을 옆에 놓고, 어떤 다정스러움이, 또, 망설인다

 

  강을 문, 피라미, 마침내, 입이, 찢어진다

 

 

 

자살의 한 형식

 

 

  섹스폰을 하나 샀어 잘못되면 타악기로 쓰일지도 몰라 처음에는 문짝에 부딪친 것처럼 머리통이 띵한 징을 살까 둥지 끝에서 뱀을 본 개개비처럼 가슴이 콩닥거리는 꽹가리를 살까, 오십견 걸린 아줌마 빨래 거는 것처럼 어깨가 뚜걱거리는 말가죽 장고를 살까 바람 빠진 자전거처럼 털털거리는 템버린을 살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구불텅한 관 속에 헛바람이라도 한입 불어넣으면 기다림을 향해 기울어진 이 마음, 한 소절 쫙 펴질 것 같아 셋그폰을 고른 거야 기타는 지난날 너무 튕기던 그 지지배 생각이 나서 싫었고 바이올린은 사장한테라면 무조건 비비고 드는 과장 새끼가 떠올라 관뒀어 이 섹스폰으로 나훈아부터 남진, 태진아, 송대관, 주현미, 장윤정까지 다 죽여주고 나면 할리 데이비슨을 한 대 사서 어메리컨 스타일을 연출할 거야 머리카락은 함부로 바람에 휘날리지 못하도록 등산용 스카프로 잡아 묶고 턱수염도 기를 거야 입으로 빨려 드는 머리카락들을 퉤퉤 뱉어가며 새로운 바람에 새로운 길을 내며 달릴 거야 멋진 포르노 배우처럼 검은 말장화도 신을 거야 조용한 우리 마을에 나쁜 평판을 남길 거야 섹시한 할리의 궁둥이를 까 내린 후, 밤낮 가리지 않고 실린더가 터져나가도록 굉음을 내며 경찰도 따돌릴 거야 늘 위험하다고 나에게 경고하던 자들을 비웃어 줄 거야 이 일은 사실 인도를 걷는 일 만큼이나 안전하며 말 타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덜 위험하다는 걸 증명해 보일 거야 내 사랑하는 할리와 함께 그들의 불안을 그냥 지나쳐 버릴 거야 장기 기증자 명단에서 그들의 이름을 발견할 거야 내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그들의 진한 섹스마저 약탈할 거야, 더 이상 나를 말리면 나도 죽여버릴 거야

 

 

 

아웃사이더

 

 

  앉은 자리에서 담배 한 갑을 다 피고 일어서는

 

  연기 한 모금

  불빛 한 점

  허투로 빠져나갈세라 앙상한 빗장뼈 속에 더 앙상한 목을 우그려 넣고, 일어설 때, 창가에서 엉망으로 구겨진 한 여자의 치맛단을 남몰래 훔쳐본다는 것은

 

  몸을 주고받는 것보다 더 뼈저린 것인지도 모른다

 

  녹색가루 달빛, 커튼은 옆으로 주름을 접는다

 

 

 

 

* 양승림 : 1961년 강원도 춘천 출생. 강원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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