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문학. 선》신인작품공모 당선작_ 우희숙 / 하승윤
―《문학. 선》2010년 여름호
심사위원 : 문효치, 홍신선
도시의 쥐 /우희숙
새벽녘이면 쥐가 들어온다
시골집 천장은 늘 쥐 오줌으로 얼룩져 있었다
소리 없이 잠입하려 해도 부실한 천장은
그들의 말발굽 같은 발소리를 감춰주지 못했다
숨죽이며 경직된 몸이 그걸 기억하나
종아리 근육이 오그라들며 새벽 단잠을 깨운다
쥐들이
스트레스와 피곤에 찌든 낡은 근육 속을 돌아다닌다
벌어진 근육은 틈새를 쉬 좁혀주지 않는다
쥐를 잡으려 종아리를 힘껏 주무른다
울뚝불뚝 틈새를 누비며 도망치는 쥐들은 쉬 잡히지 않는다
힘든 육체를 찾아 새벽잠을 깨우는 쥐들
근육의 살점을 뜯어 먹는다
한 입 물어뜯길 때마다 악! 하고 벌떡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들이 배불리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허기를 채운 쥐가 잠적하고
근육은 종일 아프다
선택 / 우희숙
태아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
스스로 도안한 제 몸을 펼치고
엄마가 풀어주는 색색의 실로 한 코 한 코 뜨고 있다
긴뜨기와 짧은뜨기를 반복하며 겉모습으로부터 속살을 채워간다
반복뜨기로 심장 근육의 Z-BAND를 오가며
탄력을 얻어 뛰기 시작하는 심장으로
붉은 풍선의 혈구들이 속을 부풀린다
텅 빈 들판을 채워가는 봄날처럼
완성되어 가는 입체적 모습이 아름답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한 세상의 실루엣을
태아가 뜨개질로 만들어 간다
한 코라도 놓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잡아당긴다
인체가 아름다운 조각보들로 연결되었다
햇살과 향기와 노래와 기쁨과 슬픔까지도
스웨터를 입은 몸을 쓰다듬으며 들락거린다
바람이 뼛속까지 들어가 애드벌룬처럼 부풀린다
기타 줄 같은 신경세포의 마이앨린 줄을
손가락 발가락으로 통통 튕기며 태아가 연주를 한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다시 풀어줄 옷을 매만지며
체온을 얻은 태아가 웃는다
꽃상여 / 우희숙
남부시립요양원
한 사내가 중환자실에서 개화중이다
공사판을 떠돌다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지 십여 년,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고
스스로 몸 한 번 뒤집을 수도 없어
등에 침대를 매달고 살아온 사내,
눈 끔뻑일 때마다 뜨거운 욕창이
꽃망울 톡톡 터트린다
무슨 삶의 응결이
저리 붉은 살의 꽃들을 피워 냈는지
꼬리뼈를 드러낸 마른 엉덩이까지
누더기 누더기로 꽃 피웠다
사내는 등짝으로 꽃등을 건다
사월 초파일 오색의 연등을 건다
진흙 같은 생이 피워낸
등가죽에 매달린 불멸의 시간들
세상 밖으로 환하게 연등 내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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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희숙 /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현 삼성의료원 근무.
저 하늘의 강물처럼 풀어지는 시간들 / 하승윤
헐레벌떡 계단을 오른 저물녘이
눈썹 위 땀으로 매달리다
얼굴에 한 획을 그으며 쭉 미끄러진다
중턱, 골프 연습장에는
휘익 툭 단단하게 뭉쳐진 시간들이 하얀 공으로 뒹굴다
한가운데로 데굴데굴 모여든다
툭 골프채로 힘껏 뒤통수를 때리면
얼마 날아가지도 못하고 그물에 걸려
다시 붙들려온다 서로의 어깨, 옆구리
온몸으로 툭툭 치고 다시 어디까지 날아갈까
푹 파인 함정에 빠지기 위해서일까
내가 그동안 무심코 툭 때려낸 말들은
지금쯤 어느 하늘 위를 날다가
뉘 가슴에 부딪쳐 다시 돌아올까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때려냈는지
청계산 어깨, 옆구리에서부터 까만 멍들이 번진다
멍으로 뭉쳐진 저녁의 경혈마다
침처럼 꽂히는 불빛, 불빛, 불빛……
산란한다 유영한다 정지한 듯 흐른다
뭉쳐진 시간들이 저 하늘 한복판의 강물처럼 풀어진다
매일매일 사람들도
물결처럼 일어났다가 탁한 물결로 그렇게 눕는다
시월의 황사 / 하승윤
한강진 나루터 철롯둑 밑에는
수백 년 굵은 느티나무 한 그루 버티고 서 있다
옛 동구 밖이었을 그곳에
막 굿판이 벌어졌다
느티나무 굵은 허리 속에서부터
내장된 징 같은 나이테가 울린다
한창 성나 작두 탄 햇빛은
굿거리장단으로 타오르다가 어느새
사로잡혀 고개 숙인
관우의 대춧빛 볼따귀처럼 물든다
그 즈음 징소리처럼 그가 온다
고비사막을 넘고 흥안령 따라 메뚜기 떼처럼
보라매 어깨 위에 얹고 몽고풍으로,
무릎 꺾인 저녁놀 거느리고 불쑥,
그가 온다
내 눈을 검지와 중지로 확 찌르고
내 삶의 유일한 푸르른 날을
두툼한 종이포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쌀알들처럼
쓰르륵 덮으며……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붙들린
장졸들처럼 동구 밖으로
이제부터 더욱 오리무중일
그가 벌써 와 있다
中華街 계단을 오르다 / 하승윤
패방(牌坊)* 지나 계단을 오르자
탁한 하늘 몇 자락
자장면 면발처럼 젓가락에 걸려 있다
지난 세기 생계를 수타 면발로 빼낸
이 거리
돼지고기와 양파, 춘장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들썩일 때마다 아이들의 입가에는
환한 웃음처럼 자장들이 묻어났고, 때로는
누군가의 얼굴이 울면처럼 퉁퉁 불었다
자장면 두 그릇에 소주 한 병을 시키고
갑자기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던 한 아버지,
그 날이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기로 한 날이었다고
꼭 데리고 오겠노라고……
끊어지지 않는 면발 같은 허기여
오랜만에 너 여기 다시 돌아왔구나
멀리 산동성(山東省)을 향해 걸린 빨래는
반송된 편지처럼 구겨져 있는데
포대화상*은 슬픔을 황금으로 바꾼 돼지처럼 웃고 앉았다
텅 빈 찬청에서
유리 테이블을 돌려도 돌아오지 않는 음식처럼
누군가의 입 속으로 들어간
이민 간 시간들
오늘도 중화가 계단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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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방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동에 소재한 ‘중국인 거리’ 입구에 있는 문 같은 것이다. 그곳에 ‘中華街’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 포대화상 : 미륵의 화신으로 불리며 특히 국내에는 ‘금복주’ 상표로 더욱 유명하다. 중국 사람들이 매우 즐겨 사용하고 음식점(반점, 주점, 루) 등의 현관이나 실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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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승윤 / 1972년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고려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현 경기도 풍생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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