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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10년 《시와시학》가을문예 당선작 _ 성은경, 여자영

by 솔 체 2015. 4. 15.

2010년 《시와시학》가을문예 당선작 _ 성은경, 여자영

 

확 외2편

 

  성은경

 

 

  1

 

확, 시선을 끌어당겼어
쉬운 선택이 생의 발목을 잡았지 
몇 번의 외출이 발가락에 물의 집을 지었어 
세상 모든 길들이 욱신거리기 시작했지
물의 집을 허물고 싶어 했어
뒤축은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지
너무 많은 길이 흔들렸어


병원골목 끄트머리 동양철학원
솔깃한 입소문 뒤로 절룩거리며 끌려갔어  
가시랭이 빼곡한 발자국마다  
잘 왔다, 잘 왔다며 터진 눈물들 꿰매주었지
발자국들이 새 살을 피워올렸어
길을 아코디언같이 접으며 돌아올 때
넉넉해진 신발이 날개를 달았지


  2

 

병실침대 밑 아버지, 낡은 신발이
어머니 발에 툭 걸렸어
내 말이라꼬는 안 듣더니 잘돼뿌릿지요
수혈중인 링거액이 신발로 스며들었지
구겨진 뒤축에는
굵은 주름으로 물집 맺혀 있었어 쿨럭, 
물집이 터지면 신발은 움찔 돌아눕고
갠찬테이, 나는 갠찬테이
저 빙긋한 웃음이 신발 끈 매듭을 풀었어
신발은 가벼워져 둥실둥실 떠올랐지

 

혼곤한 이승잠 머리맡에서
아버지는 호흡이 가빠지고
어머니는 낡은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어
신기료장수의 확, 실한 박음질 
또 한 번 기다리고 있었지

 

 

 

새발뜨기

 

 

 

바짓단을 뒤집어 놓고

바늘과 실로 이야기를 또박또박 기울 거예요

숨어서 하는 이야기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아요

일기예보도 가끔 예측을 비켜가지만  

오버로크만 감추면 다 좋은 말이라는 착각은 금물이에요

콩밥 겉 먹는 시침질,

미봉책의 휘갑치기도 있잖아요

 

이야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엮어야 해요

앞으로 진행 보폭은 선택, 뒷걸음질 한 땀쯤은 필수,

급하다고 이야기를 건너뛰지 말아야 해요

종반까지 갔던 줄거리를

다시 풀어야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구요

이야기가 꼬이면 잠시 바늘을 놓고

제풀에 풀리게 하늘에다 맡겨봐요

빙글빙글 돌다 멈추는 시점, 잘 포착하세요

 

하지만 당신 바짓단을 가두는 건 아니예요

미로는 빠져나갈 수 있지요

이야기가 지겨워지면 잠시 쉬어요

자칫 손톱 밑을 찔러

붉은 핏물 이야기가 줄줄 샐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 여태 상상했던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지요 

진작 어머니 이야기책 문구들을 베끼고

이야기꼬리를 물고 잠방잠방 걸어간 참새,

그 예쁜 발자국을 상상했어야죠 

종종종 찍힌 참새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잠시잠깐 황홀감을 맛볼 수 있을 거예요

 

보세요, 한바탕 돌아가다 보니

빼곡한 문장이 서로 손을 맞잡았네요

이젠 마무리, 매듭은 되도록 촘촘하게

이야기를 뒤집은 뒤 탈탈 털어 살펴봐요

겉과 속이 반듯한 문장이 되었네요

거짓말처럼 당신 외출도 즐거울 거예요

이제 바짓가랑이에 다리를 넣어도

엄지발가락에 이야기는 걸려나오지 않을겁니다

쉬지 않고 맞물린 이야기는 완성도가 높은 거니까

터진 줄거리가 있어도 당분간은

옆 문장들이 지켜줄 테니 안심하세요

 

언제까지 나를 숨겨두고 싶은 당신,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묻는다면

은밀히 말해줄래요

숨어서 하는 이야기라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고

 

 

콜라 캔

 

 

뚜껑을 열자  

콕 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카메라 렌즈에 화살이 날아가 깨지는 순간처럼

이 통쾌한 기분은 뭘까

 

술 취한 사내가 휘두른 칼에

낮달이 눈을 감았어

캐리어 카 끌던 남녀 입술이

하나로 보이자 확, 나를 열고 싶었지

읽을 수 없는 풍경을 힐끗거려도

눈빛은 분산되지 않더군

전신을 타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말, 말들

  

톡 쏘며 입술을 어루만지는 이산화탄소

내 말과 네 말을 부드럽게 이어 줄 거야  

달콤한 상상 같은 밀어와

너를 소름 돋게 하는 자극적인 문장이

꿀꺽 꿀꺽 목을 타고 들어가

중추 신경계를 기쁘게 하고 싶어

그러나 독을 문 장미는

한 문장도 말하지 않았지

오랫동안 참았던 말, 넌 그 말들이

한꺼번에 네게로 쏟아지는 상상

해봤니

 

봐,  입을 열자마자 팽창된 말들이

그칠 줄 모르고 생각 밖으로 쏟아졌어

내 한동안의 고뇌 순식간에 증발했어

그리고 너는,

불온한 상상들을 전부 토해 버렸지  

아직 할 말이 남은 너는 나를 다 마시지 못하지

 

그럴거면, 왜 나를 흔들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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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경 : 경남 창녕출생. 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학과 졸업. 비유와 상징 동인. <시와시학>2010년 가을문예 등단

 

 

<당선 소감>

 

  성은경

 

 

산기슭 자갈밭을 샀다

자갈을 골라내어 일군 밭, 흙이

장맛비에 마구 쓸려나간다

빗물에 쓸려나가는 흙탕물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비……

꿈이었다  깨고 나니 온몸에 땀이 축축하다

다음 날 당선 전화를 받았다

맨 먼저 생각나는 꿈,

시를 온몸으로 쓰라는 어떤 계시는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꿈을 해석한다

쏟아지는 빗물을 온몸으로 받아 내리라는 각오, 덜컥 겁이 난다

그러나 자신은 있다

 

먼저 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시와 시학 식구로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늘 힘이 되어 준 두 아들, 생각하면 가슴이 찡합니다

시의 길로 인도해주신 강인한 선생님께 큰 절 올립니다

아울러 김옥전 선배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밤낮 머리를 맞대고 시를 이야기한 정수경시인, 신운영 문우, 정말 고맙고

아울러 '비유와 상징' 동인식구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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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에 기대어 외2편

 

  여자영

 

 

 

바다가 퍼렇게 멍들고 있다

 

아우성치며 달려왔다가

허무하게 물러가는 포말

멀리서 갈매기 추억처럼 날아와

파도 한 줌 베어 물고 꿈처럼 날아간다

 

그토록 몸부림치는

알몸의 그늘에

파르라니 스스로 그림자를 묻고

 

아득히

수평선으로 물러나 앉아

실눈 뜨고

평등의 일획을 긋고 있는

저, 수평선 그대

 

 

 

은행나무

 

 

 

수도승들이

황금가사를 떨쳐입고 있다

 

가부좌 틀고 앉아

무연히 속내를 비워 내리는

저 무량한 법어들

 

남루한 노파 하나

탑돌이 법륜을 굴리고 있다

 

 

 

소 눈을 보다

 

 

 

저, 무량한 사색을 보라

 

앉거나 서거나

지그시 눈 감으나

생을 되새김질하는

 

그 어진 눈 속에

가득히

우주눈망울 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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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영 : 함흥 출생. <시와시학>2010년 가을 문예로 등단

 

 

<당선 소감>

 

  여자영

 

 

겨울 산에 와서

 

수척한 겨울 산이 좋다

수직으로 갈기를 세우고

새이새이 하늘을 내비친다

 

세상 낯가림으로 서성거리며

그 어느 곳에도 머물지 못하고

견딜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은

내 안에 벽을 쌓아만 갔지

 

생애의 절정에서 부질없는

시란 코뚜레를 걸고

허무에 대항하듯

때늦은 겨울 산에 오른다

 

남의 눈엔 쉽게 보이는 삶도

내 눈엔 계산 밖의 일처럼 늘,

숙제를 짊어지고 걸어야만 했다

 

여릿여릿 진저리치는

저 물기 마른 가지처럼

가볍게 늙어 가고 싶은데ㅡ

 

부끄러움과 슬픔의 언저리에 그때 늦은 고백 속 속절없이 살아져가는 영혼의 조각들을 불러내고 싶은 것일까

몸 안에 물기를 말려 가며 가볍게 늙어 가고 싶다

 

부세청연(浮世淸緣) 선과선연(善果善緣)

늘 함께한 문우들, 부족한 글 심사해 주신 교수님, 내 이웃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고맙습니다. 큰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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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연스럽고 힘찬 형상력

 

 

 

   열 명 남짓한 예비 시인들의 작품에서 먼저 여자영의 「수평선에 기대어 」를 보았다, 별 필요 없이 감정과 수다를 풀어 놓는 결함을 벗어나서 깔끔하게 그러나 조용히 주제의 핵심을 따라간 자세가 돋보인다.

  요즘 젊게 쓰겠다고 줄줄이 없어도 좋을 말들을 쏟아 놓는 것 보다 휠씬 전달에 있어서 효과가 있어 보인다.

  여자영은 사물에 다가가는 접근성이 뛰어나다

                      

                          아득히

                          수평선으로 물러나 앉아

                          실눈 뜨고

                          평등의 일획을 긋고 있는

                          저, 수평선 그대

 

                                               ㅡ「수평선에 기대어 」부분

 

   마지막 연의 파도 한 줌 베어 물고 꿈으로 사라져 버리는 허상과 허무적 통찰이 실눈으로 평등의 일획을 긋는 절연한 구절을 만들어 낸다. 실눈 하나가 지상의 평등을 긋는 인간의 무한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앞으로 시라는 영원한 미완성의 세계에서 쉽게 주저앉지 않고 꿋꿋하게 걸을 수 있음을 믿어 「소의 눈을 보다 」「은행나무 」와 같은 시들을 주저없이 시단에 내어 놓는다.

 

   성은경의 「확」도 만만치 않다. 오래 시를 붙들고 거친 산을 넘어온 듯한 내성이 붙어 진구렁을 걸어도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을 수 있는 척추의 힘을 시에 온전히 쏟아 부었다.

 

                   확, 시선을 끌어당겼어
                   쉬운 선택이 생의 발목을 잡았지 
                   몇 번의 외출이 발가락에 물의 집을 지었어 
                   세상 모든 길들이 욱신거리기 시작했지

 

                                                                         ㅡ「확」부분

 

와 같은 축축하면서도 건조한 시상을 토해 놓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은경은 언어 구사가 자연스럽고 힘차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그 힘이 앞으로 시인의 힘겨운 길을 갈 수 있는 의지가 되리라 본다. 「새발뜨기 」「콜라 캔」과 같은 작품들도 같은 느낌이다.

   <시와시학> 가족이 되는 두 신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결코 쉽지 않는 길을 그러나 기쁘고 성실하게 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심사위원 _  신달자 (시인), 이가림 (시인. 인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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