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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좋은 시 찾기와 좋은 시 베껴 쓰기/강인한

by 솔 체 2015. 5. 6.

좋은 시 찾기와 좋은 시 베껴 쓰기/강인한

 

 

 

   신예의 시집은 대체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까지에 음미해볼만한 시가 제법 들어 있다. 그러다가 세 번째 시집에 이르러 맥이 풀리기 시작하고 대충대충 엊그제의 명성에 기대려는 실망스런 경우를 많이 본다.

   시집 한 권에서 정말 좋은 시 세 편 고르기도 어려울 때는 참 딱하다. 명성이 자자한 시인이었는데 오랜만에 나온 그의 시집이 막상 기대를 배반할 때의 심정이란. 시 전문지도 마찬가지다. 월간이건 계간이건 잡지 한 권에서 좋은 시 서너 편 골라 읽기가 수월치 않다. 썩 좋은 시를 많이 발표하는 이가 노상 좋은 시만을 뽑아내는 것도 아니다.

   한번 읽고 이거 좋은 시로군, 하고 모래 속에서 금을 찾아낸 듯 눈에 띄는 시를 발견할 때 우리 카페 ‘좋은 시 읽기’ 코너에 소개할 생각으로 나는 흥겹고 즐겁다. 그런데 막상 그 시를 한글 파일로 작성하느라고 내 서툰 독수리 타법으로 베끼다가 보면 하, 이럴 수가… 이게 아니다 싶은 게 암만해도 껄쩍지근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시를 만나면 한참이나 좋았다가 한 순간에 그만 시들해진다.

 

 

   바다를 보았다

   관리인이 말간 수면을 한 번 더 닦아낸 후였다

   물결 속갈피를 들추어 제 둥글게 말린 몸 스윽 밀어 넣었다가

   쑴벙, 다시 뒤로 나앉는 앵무가 보였다

   앵무 아래 삼엽충도 유유히 잔발을 하느작대며 행성의 원시 해양에 대하여 해설을 덧붙이느라 토를 달지만

   그의 수다는 들을 만했다

 

   잘 굳은 바다를 보았다

   깻묵처럼 눌리고 접힌 누 억년의 유적지가 고스란히 보존된

   소금기 배긴 몇 토막의 바다,

 

   고요의 형식으로 장전된 디엔에이들이다 박제된 씨앗들이다

   먼 후일 분명 깨어날 것들이 지금은 몽유의 몸짓으로 의문 투성인 유아들의 종알거림 사이를 헤엄치고 있다 경쾌하다

   아이들은 의미를 몰라도 수면에 바싹 눈을 대고

   앵。무。조。개.*

   또박또박 명패을 읽어낸다 바다가 더 도드라져 나온다

 

   뭐가 있어요?

   돌속에 예쁜 조개가 샤방샤방 들어있어요

   어때요? 죽여줘요

 

   한 떼의 어린 미래들이 빠져나간 해양관은 적막하고

   소임을 끝낸 바다는 이제 지느러미를 거두어들인 채 한나절 더 굳으며

   제 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돌, 조개, 비린내, 물새소리, 혹등고래의 노래, 아-해조음소리

   바다는 철석이고 철석이는 기억이었다

 

 

     ———

     *앵무조개;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의 두족류

 

 

  ‘화석’이라는 제목의 시다. 첫 연에서 박물관 관리인이 화석을 닦아 보여주는 대목도 좋고 특히 둘째 연은 얼마나 가슴 뛰게 근사하고 장중한 표현인 것인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셋째 연이 좀 싱거운 듯 풀어지더니 단순한 박물관 실내 풍경 묘시에 그치고 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뭐가 있어요?”부터 “죽여줘요”까지의 넷째 연..

   짐짓 화석 한 개를 보며 고생대의 바다를 끄집어내는 엄숙하고 중후한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이게 웬 뚱딴지같은 유행가 가락일 것인가. ‘샤방샤방’과 ‘죽여줘요’에서 얼굴에 느닷없이 찬물로 물벼락을 맞은 듯.

   이 시의 마무리도 웬만큼 괜찮은데… 한참 입맛을 다시다가 나는 좋은 시 한 편이 한 순간에 깨져버리는 서운한 느낌을 어쩌지 못한다. 이 시를 쓴 시인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지만 그런 친소 관계를 떠나서 정말 아쉬운 시였다.

   겉만 보고 좋은 시로 느껴질지라도 다시 한 번 내 손으로 베껴 써 보면 좋은 시인지 아닌지 그 진위가 확연해짐을 이렇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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