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문학 참고서재

병 속의 고양이, 잃어버린 낙원 / 조정인

by 솔 체 2015. 5. 7.

병 속의 고양이, 잃어버린 낙원 / 조정인

 

병 속에 고양이를 키우세요 / 강인한

 

 

수박 맛있지요

열매가 둥글다는 상식을 넘어

네모 난 수박은 상식보다 맛있을 거야

정사각형 틀 안에 가두고

키운 멋진 수박

처럼

네모 난 유리병 안에

새끼 고양이를 키워 보실래요

부드럽게 부드럽게

새끼 고양이를 병 속으로 유인하세요

얼른 병마개를 닫은 다음

두 개의 빨대를 끼우세요

하나는 먹이를

또 하나는 배설을 위한 장치

들어가면 나온다는 철학을 위한 장치

사랑도 정기적으로 확인이 필요하듯

가끔씩 뼈를 유연하게 하는 약물을

투입하기도 하면

귀여운 고양이는 병에 맞춰 자라지요

자라면서 끝내는 유리병 모양이 된다나요

사뿐한 도약 호기심 많은 질주는 거세된 채

적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미덕인지

고양이는 잘 알지요

분재 고양이 아니 본사이 키튼

네모 난 고양이를 보세요

얼마나 정직하고 우아한지요

죽을 때까지 유리병에 갇혀서

동그란 눈을 깜박이는 본사이 키튼

당신의 맨션에 살아서 빛나는 소품

본사이 키튼,

 

             ㅡ 2010년, 계간《시선》봄호 ㅡ

 

 

강인한 시 감상메모; 잃어버린 낙원 / 조정인 (시인)

 

 

   그의 시편들은 궁극에는 슬프다. 슬픔을 말하는 방식이 미를 탐하여 화려한 듯 처연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번개같이/ 내려진 기요틴의 칼날 아래/ 눈 뜬 채 웃고 있는 내 머리가 뒹굴었다// 내 눈에 맺힌/ 물방울 하나에 너의 모습이 비쳤다-「사랑의 기쁨」중에서.

   <젊은 베르테르-강인한의 슬픔>으로 천천히 잠입해가도록 손을 이끄는 시집『입술-시학刊, 2009』을 덮는다. 가급적 기요틴의 칼날 아래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내)얼굴과 마주치지 않도록.

 

   최근 발표작인 Bonsai-Kitten, 이름 하여 고양이 분재. 인터넷을 뒤진 결과 이 이야기는 2000년부터 세간에 떠돈 것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을 풍자하는 일종의 패러디라는 걸 알고, 아니 그리 믿기로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즐겨 이용하는 팬시가게에서는 밀폐된 유리병에 보리쌀만한 물고기를 담아 팔기도 한다. 말간 물병 속을 위 아래로 흐르는 물고기는 그대로 한 방울 붉은 눈물방울일 것이다.

   이 시를 처음 대했을 때의 당혹감은 아직도 명치 아래 웅크려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진정성은 사실여부를 떠나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잔혹성의 극한이 어디까지인가를 묻는 데 있다, 강제와 규격의 폭력성을 역설적 화법으로 고발하는 데 있다. -쉘 위 댄스? 그는 부드러운 어투로 손을 내밀어 인간이 뭇 생명에게 저지른 가지가지 잔혹행위의 공시현장인 저 어두운 카타콤의 낭하를 내려서게 한다. 욕망이 퍼트린 포자, 저 냉혈유령들이 흘러 다니는 지하무덤 한 구석, 그가 손전등을 비춰 보이는 곳에 유리병을 뒤집어 쓴 어린 고양이가 있다.

 

   우리가 세상에 와 서로 어루만지는 일이 얼마나 중한 일임을 망각한 데서 낙원추방은 시작된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낙원은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 사랑하라. 구체적으로. 당장, 가냘피 우는 새끼고양이를 품에 안아 보라. 따뜻한 체온을 가진 것들에게서 흘러드는 에덴을 확인 할 것이다. '사뿐한 도약 호기심 많은 질주'-동물의 활동성이 주는 생명감으로 충만한, 그들과 공유하는 공간의 풍요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들과 동거를 자처할 것이다. 당신 품에서 골골거리는 새끼고양이는 단지 애완이 아닌 반려인 것이다. 생명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이 시 한편을 읽는 동안 -만물은 존재의 평등을 공유하고 있다, 라고 설파한 엑카르트(Meister Eckhart 독일 1260-1328)의 영성이 그립다.

 

----------------

조정인 / 1953년 서울 출생.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