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의 「청동거울의 뒷면」감상 / 강은교
청동거울의 뒷면
조용미 (1962 ~ )
내가 보는 것은 늘 청동거울의 뒷면이다
청동거울을 들여다보기까지
짧은 순간의 그 두려움을 견뎌야만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볼 수 있다
구름문, 당초문, 연화문……
시간의 두께에 덮인 녹, 그 뒷면에
정말 무엇을 비추어볼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청동거울 안의 나를 보고 싶다
업경대를 들여다보듯 천천히 동경(銅鏡)을 들어
두 마리 물고기가 마주 보고 있는
쌍어문경(雙魚紋鏡)을 얼굴 앞으로 끌어당겨야 하리
남녀와 시종들과 명기(冥器)들 속에서
푸른 옷을 껴입으며
오랜 어둠 속에서 새겨놓았던 또렷한 얼굴 하나를
쓰윽 손으로 한 번 문지르기만 하면
몇백 년의 시간이 다 지워지고
거기 푸른 녹이 가득 덮인 거울 위에
거울을 들여다보던 오래전 사람의 얼굴이 나타날 것이다
두근거리며 나는 거울의 뒷면에 새겨진
쌍어문을 천천히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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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이 중요하다. 앞면이 아니라, 사물의 뒷모습들, 혹은 내밀한 모습들이 들어있기 마련인 뒷면, 시의 상상력은 바로 그 뒷면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뒷면의 상처들이 우리를 만든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남는 것은 무엇일까. 깨진 거울의 뒷면이 아닐까. 거기 바람은 하나의 무늬가 되어 지나가리라. 거기서 달려오는 과거를 만나라.
뒷면이 없으려는 앞면들이 오늘의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모든 뒷면이 앞면을 완성함을 잊은 듯이.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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