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숙의 「산중문답」평설 / 홍일표
산중문답
조용숙
아무리 예쁜 보살들이 찾아와
온갖 방법으로 유혹해도
눈길 한번 안주는 부처님을 애인 삼은
비구니 스님
그 비법이나 한 수 적어볼까 싶어
노트북 들고 찾아간 작은 암자
플러그를 꽂는 순간
암수가 만나면 전기가 통한다는
세속의 이치 비웃으며
노트북 전원이 확 나가버린다
웬일인가 싶어 어리둥절 하는 사이
가부좌 풀고 달아나는 부처님 봤냐며
밭에서 금방 따온 풋고추에 된장 올린
밥상이나 받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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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숙의 공교한 손끝에서 빚어진, 쉽지만 쉽지 않은 시. 경우에 따라서는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돌아설 시가「산중문답」이다. 이 시에서는 ‘세속의 이치’와 ‘밥상’이 대응된다. 그 사이에 ‘부처님’이 꼽사리 낀다. 이래저래 부처님은 동네북이다. 마음씨 좋은 할배요 아재다. 10행까지는 정공법을 구사하여 평이한 진술로 일관한다. 11행부터 뒤통수를 친다. 여기서 비구니 스님이 한 말씀 하신다. ‘가부좌 풀고 달아나는 부처님 봤냐’며 걱정 말고 밥이나 처먹으란다. 백 번 옳은 말씀이다. 여기서 고장 난 노트북을 움켜쥐고 씨름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전원이 나간 노트북은 불 꺼진 무덤이다. 정신 줄 놓은 중생들이다.
시의 화자는 슬쩍 ‘세속의 이치’를 운운한다. 지나친 친절이다. 하긴 너무 불친절해도 독자놈(?)들은 툴툴거리니까. 홱 돌아서서 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이래서 시인해먹기 힘들다는 거다. 누구 비위 맞추기 위해 시 쓰는 건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시의 화자는 비구니 스님 한 말씀에 밥상을 받았을 터이고,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한 끼 밥을 맛있게 해치웠을 것이다. 배부르고 마음 따듯했을 것이다. 가부좌 풀고 부처님도 달아나지 않았을 것이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을 것이다. 몸 공양, 마음 공양 다 이루었으니 좀 있다가 곡차라도 한 잔 하면 금상첨화겠다.
나는 대한민국의 많은 시인들이 너무 성급하게 꼬리를 내려버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툭 하면 부처님 한 말씀에 기대어 세상 모든 걸 깨친 듯 똥폼을 잡는다. 노자, 장자를 그렇게 우려먹었으면 됐지 이제 부처님까지 요절낼 기세다. 살찐 부처님도 있지만 나처럼 뼈만 남은 부처님도 많다. 제발 부처님 끌어다가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말자.
조용숙 시인은 눈 밝고 마음 따듯한 시인이다. 이쯤에서 나는 조용숙 시인이 ‘어깃장’의 명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구니 스님과 눈이 맞아 가부좌 풀고 야반도주하는 부처님! 그런 부처님을 상상했으면 좋겠다. 조용숙은 그럴 능력과 시적 감성을 타고난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날, 어디 마음 열고 시원한 맥주 한 잔 할 사람 없나?
홍일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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