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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심지아의 「모든 침대는 일인용이다」평설 / 홍일표

by 솔 체 2015. 7. 18.

심지아의 「모든 침대는 일인용이다」평설 / 홍일표

 

모든 침대는 일인용이다

 

   심지아

 

 

   창백한 밤이야 목조 프레임이 흔들렸다 기억하지 못할 이야기를 사랑하느라 잠드는 사람들 여러 번 깜빡이는 형광등처럼 우리의 내부는 밤새 어둡게 번쩍인다 환한 정전이거나 검은 불빛이거나

 

   수평으로 누워 바라보는 세계는 어쩐지 내가 사라진 곳에서 펼쳐진 풍경 같아 서늘하고 담담한 간격으로 우리는 낯설어지고 우리는 아늑해진다 점점 커지는 시계소리 그것을 심장이라 믿으며

 

   새벽 무렵 눈을 뜨면 잠긴 건물들 사소하고 쓸쓸해 지평선은 사라지면서 나타나고 우리는 걷는다 마땅한 인사를 건네지만 우리가 말아 쥐고 있는 것은 목화솜 이불,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는 유일하게 싫증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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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아 | 2010년 봄 「수달 씨, 램프를 끄며 외 6편」으로 제4회《세계의 문학》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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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쓰는 사람들은 질투의 화신이다. 좋은 시를 보면 감동하면서 동시에 부러움과 시샘의 감정을 갖게 된다. 올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심지아는 남이 부러워할 만큼 젊고 참신한 시인이다. 당선작 7편을 읽고, 나는 한동안 망연했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젊은 시인의 언어를 보면서 생득적으로 언어의 태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단순히 세대의 차이에서 오는 감각의 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색깔과 냄새와 모양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작품을 며칠 동안 옆에 두고 되풀이하여 읽었다. 멀고 낯설게만 느껴지던 시의 맥박이 희미하게 손끝에 감지되기 시작했다. 박동은 또렷했고 단단한 시의 힘이 느껴졌다. 심지아 시인의「모든 침대는 일인용이다」는 당선작 중 한 편이다. 고루한 어법에 길들여진 눈에 낯선 이미지의 보법이 새롭고 신선했다. ‘모든 침대는 일인용이다’라는 제목은 개체화된 존재의 적막한 삶의 이면을 암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쓸쓸하게 혼자 눕는 침대에서 화자의 ‘창백한 밤’은 펼쳐진다. 1연에서 ‘기억하지 못할 이야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의 내부는 밤새 어둡게 번쩍인다’고 화자는 말한다. 그 상황을 시인은 절묘하게 ‘환한 정전’과 ‘검은 불빛’으로 포착한다. 잠들지만 잠들지 못하는 상황은 지속되면서 2연으로 심화 확대된다. 침대에서 누워 바라보는 세계는 서늘한 죽음의 풍경이다. 존재의 소멸과 그 후의 풍경이 화자의 눈앞을 언뜻 스치고 지나가고 낯설어진 존재의 알몸을 보게 된다. ‘시계소리’를 ‘심장’으로 믿는 시인의 감각은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와 3연의 현실과 맞닥뜨린다.

   새벽에 눈뜬 화자는 적요한 눈길로 그저 사소하기만 한 바깥 건물을 바라보면서 생의 스산한 풍경에 쓸쓸해지다가 거리로 나와 일상의 남루와 만나게 된다. 어제처럼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며 나날의 삶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그렇듯 손에 ‘말아 쥐고 있는 것은 목화솜 이불’이다.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것만이 ‘유일하게 싫증나지 않’는 실체요 바탕이라고 언술하는 이 시의 구조는 스스로 문을 닫아거는 모양이 아니라 앞뒤 대문 활짝 열어놓은 형상이다.

   기존의 어법에 익숙한 독자라면 「모든 침대는 일인용이다」의 열린 구조가 다소 의아하거나 모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의 시에서 독자는 보는 눈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읽어내거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함의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단선적 구조의 시가 아니라 겹겹의 층위를 숨기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홍일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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