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정의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감상 / 강은교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성미정 (1967~ )
곰국을 끓이다 보면 더 이상 우려낼 게 없을 때
맑은 물이 우러나온다 그걸 보면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뽀얀 국물 다 우려내야 나오는
마시면 속이 개운해지는 저 눈물이
진짜 진주라는 생각이 든다
뼈에 숭숭 뚫린 구멍은
진주가 박혀 있던 자리라는 생각도
짠맛도 단맛도 나지 않고
시고 떫지도 않은 물 같은 저 눈물을 보면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
뭔가 시원하게 울어내지 않았다는 생각
이 뽀얗게 우러나온다.
—시집《사랑은 야채 같은 것》(2003)
--------------------------------------------------------------------------------------------------------
시도 이렇게 재미있다. 곰국 끓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서 이런 그림 하나를 상큼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자동화된 우리의 혀에 그 ‘낯익었으나 낯설게 된’ 시의 국물을 붓는다. 우리의 혀는 갸우뚱거린다. 그 익히 잘 아는 국물에서 무슨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바로 눈물의 향기다. 순간 곰국을 우려내는 일은 바로 눈물을 우려내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 눈물은 보통 눈물이 아니다. ‘뼛속’을 흐르는 눈물이다. 뼈에서 ‘우러나온’ 눈물은 부엌에 가득 차고, 거실에 가득 차고, 이윽고 현관문을 지나서 아스팔트 길 위로, 모든 길 위로 줄줄 흐른다. 눈물이 온 골목마다, 한길마다, 지하철 칸칸이 가득 차서 출렁거린다. 눈물을 거둘 날을 기다리는 눈물이 되어.
강은교 <시인>
'문학 참고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대의 「사곶 해안」감상 / 김연수 (0) | 2015.07.25 |
---|---|
송재학의 「사물 A와 B」감상 / 김기택 (0) | 2015.07.24 |
황인숙의 시 「강」평설 / 장석주 (0) | 2015.07.22 |
김경미의 「조금씩 이상한 일들 4」감상 / 강은교 (0) | 2015.07.21 |
문정희의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평설 / 김사인 (0) | 2015.07.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