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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송재학의 「사물 A와 B」감상 / 김기택

by 솔 체 2015. 7. 24.

송재학의 「사물 A와 B」감상 / 김기택

 

사물 A와 B

 

   송재학

 

 

 

   까마귀가 울지만 내가 울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속의 날 것이 불평하며 오장육부를 이리저리 헤집다가 까마귀의 희로애락을 흉내내는 것이다 까마귀를 닮은 동백숲도 내 몸 속에 몇 백 평쯤 널렸다 까마귀 무리가 바닷바람을 피해 붉은 은신처를 찾았다면 내 속의 동백숲에 먼저 바람이 불었을 게다

 

   개울이 흘러 물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다 내 몸에도 한 없이 개울이 있다 몸이라는 지상의 슬픔이 먼저 눈물 글썽이며 몸 밖의 물소리와 합쳐지면서, 끊어지기 위해 팽팽해진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 내 안의 모든 개울과 함께 머리부터 으깨어지며 드잡이질을 나누다가 급기야 포말로 부서지는 것이 콸콸콸 개울물 소리이다 몸속의 천 개쯤 되는 개울의 경사가 급할수록 신열 같은 소리가 드높아지고 안개 시정거리는 좁아진다 개울물 소리를 한번도 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개울은 필사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시집『진흙 얼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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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몸에는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흔적이 있습니다. 사랑했던 대상은 결국 내 몸으로 들어와 몸과 하나가 되어 자국으로 남게 되지요. 이를테면 이 시의 까마귀 소리 같은 것. 까마귀 소리를 듣는 순간 그동안 몸속에 저장되어 있던 다른 모든 까마귀 소리도 깨어나는 것. 까마귀가 있던 동백숲, 그 숲에 이는 바람, 개울물 소리도 일시에 함께 깨어나는 것. 시인의 귀는 온몸에 퍼져있는 모양입니다.

   인간이 사물을 내려다보는 인간-사물의 수직적 관계라면, 나와 까마귀 소리는 아무 관계가 없겠죠. 내가 사물처럼 낮아져 사물A-사물B의 수평적인 관계가 될 때, 귀 밖의 까마귀 소리와 내 몸속의 까마귀 소리는 서로 합쳐지면서 사랑스러운 울림이 되겠지요.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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