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석의 「명이」감상 / 강은교
명이
최두석(1956 ~ )
요즘에는 별미의 나물이지만
예전에는 섬사람들 목숨을 잇게 해서
명이라 부른다는
울릉도 산마늘잎 장아찌
밥에 얹어 먹으며 문득
세상에는 참 잎도 많고
입도 많다는 것 생각하네
세상의 곳곳에서
기고 걷고 뛰고 날며
혹은 헤엄치며
하염없이 오물거리는 입들
과연 잎 없이 입 벌릴 수 있을까 생각하네
----------------------------------------------------------------------------------------------------
아마 위 시의 명이나물을 많이들 알고 계시리라. 지난여름 어느 날 새콤달콤하게 담근 그 나물장아찌를 드시고 오신 분들도 계시리라. 그런데, 그것을 밥에 얹어 먹는 그 순간, 시인은 입을 벌리며 잎을 생각한다. 발음의 유사성이 시인의 감성을 건드린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늘 삶의 방석 위에 앉아 들여다보고 있었기에 그 유사성이 얼른 시의 전율로 온 것이리라.
이렇게 시는 느닷없이 온다. 늘 전율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 그 문틀 옆에서 보이지 않는 ‘잎’들과 ‘입’들을 이어주는 것, 그것이 시인이 할 일이다. 당신도 삶의 방석 위 어느 순간에다 전율의 문을 달라. 문제는 그 전율의 강도다. 얼마나 강렬하게 전율하는가, 하는 것!
강은교 <시인>
'문학 참고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소연의 「강릉, 7번 국도」감상 / 강은교, 고형렬 (0) | 2015.07.29 |
---|---|
물수제비의 언어, 지속적 기억의 현현/ 강인한 시집, 『입술』서평 (0) | 2015.07.29 |
박정대의 「사곶 해안」감상 / 김연수 (0) | 2015.07.25 |
송재학의 「사물 A와 B」감상 / 김기택 (0) | 2015.07.24 |
성미정의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감상 / 강은교 (0) | 2015.07.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