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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신선하고 달콤한 시 한 편 / 고하늘(문예창작과 학생)

by 솔 체 2015. 9. 14.

신선하고 달콤한 시 한 편 / 고하늘(문예창작과 학생)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강인한

 

 

이른 아침 갓 구운 핑크의 냄새,

골목길에서 마주친 깜찍하고 상큼한 민트 향은

리본으로 치장한 케이크 상자처럼 궁금한 감정이에요.

 

초보에게 딱 맞는 체리핑크는

오전 열 시에 구워져 나오지요.

십대들이 많이 구매하지만 놀라지 마셔요, 때로는

삼사십대 아저씨가 뒷문으로 들어와 찾을 때도 있어요.

 

육질 좋은 선홍색의 연애는

오후 두 시 이후에 뜨거운 오븐을 열고 나와요.

구릿빛 그을린 사내가 옆구리에 낀 서핑보드

질척거리는 파도 사이 생크림 같은 흰 거품은 덤이지요.

 

아무래도 못 잊는 블루,

그 중에서도 뒷맛이 아련해 다시 찾는 코발트블루는

땅거미 질 무렵 산책로에 숨었다가 뛰쳐나오기도 하지만요.

 

가장 멋들어진 연애는 한밤의 트라이앵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토라지는 삼각관계로 구워내

당신의 눈물에 찍어먹는 간간한 마늘빵 그 맛이지요.

 

                                            『문장 웹진』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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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어떤 연애를 하고 싶은 가요?

   갓 구운 핑크의 냄새, 민트향, 체리핑크…….

   오랜만에 달콤한 향을 풍기는 시를 만났다. 입 안에 초콜릿 한 조각을 넣은 기분이다. 혀를 뒤덮는 초콜릿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런 기분이다. 나는 이 시를 읽고서는 당연히 젊은 작가가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반전이 있었다. 작가는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분이셨다.

 

   이 시를 보면 단어 하나하나가 귀엽고 상큼하다. 마치 막 사랑에 빠진 10대 소녀의 감정과도 같다고나 할까? 이 시를 읽고 생각해보니 사랑이라는 것은 참 많은 향과 맛, 색을 낸다. 내 사랑의 색은 작가가 아무래도 못 잊는다는 블루이다. 연애 한 번 못하고 짝사랑만 줄기차게 해온 나는 지난날의 짝사랑 상대들을 아직도 아련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주위에서 연애하는 친구들을 보면 더욱더 우울해진다.

 

   나는 연애하는 친구들의 그 행복한 감정을 제대로 이해해본 적이 없다. 슬프게도 연애경험이 없으니 말이다. 매일 보는 얼굴이 지겹지도 않은지, 기념일을 세세하게 챙기는 것은 힘들지 않은지, 돈은 아깝지 않은지. 모든 게 다 궁금하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아서 만날 헤벌쭉 거리는 지도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니 조금은 연애의 감정에 대한 감이 온다. 무척 달달하고 온 세상이 핑크색일 것이다. 때론 뜨거워서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불꽃같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라는 것은 빵집에 갔을 때 먹고 싶은 빵들을 골라오라는 엄마의 말에 무엇을 고를까하는 행복한 고민과도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이 시의 첫 연이 아주 맘에 든다.

 

         이른 아침 갓 구운 핑크의 냄새,

        골목길에서 마주친 깜찍하고 상큼한 민트 향은

        리본으로 치장한 케이크 상자처럼 궁금한 감정이에요.

 

   나는 이 구절이 작가가 생각하는 연애에 대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아주 따끈하고 상큼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비밀스러운 감정. 그것이 바로 사랑과 연애 아니겠는가! 절로 웃음이 나는 구절이다.

 

   또한 두 번째 연의 마지막 구절도 나의 눈길을 끌었다.

 

        십대들이 많이 구매하지만 놀라지 마셔요, 때로는

        삼사십대 아저씨가 뒷문으로 들어와 찾을 때도 있어요.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단번에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10대 소녀들과의 금단의 만남을 가지려하는 삼, 사십대 아저씨들의 행동을 이렇게 써냈다는 것에 놀라웠다. 무척이나 깜찍한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십 년 째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나는 한 번 쯤이라도 오후 두 시 이후에 뜨거운 오븐을 열고 나오는듯한 연애를 하고 싶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사랑이 될 것이다. 이제는 한 사람만을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저릿한 사랑이 아닌 뜨거운 사랑에 누군가와 같이 빠져보고 싶다. 맨 마지막 연의 ‘한밤의 트라이앵글’과도 같은 사랑은 아직 무섭다. 너무나 격렬하고 빠져나오기 힘들 테니 말이다.

 

   오늘 나는 젊은 작가들이 쓴 시들보다 더욱 더 신선하고 달콤한 시를 맛봤다. 아주 달콤했다. 이 시는 따로 내 개인 공간에 소장해두고 싶다. 그만큼 외로운 내 감정을 톡톡 건드려준 귀여운 시였다.

 

 

                                                           <시창작의 이론과 실제>

                                                                   문예창작과 고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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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아마 이 글을 쓴 이는 스무 살 난 문예창작과 학생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의 과제로 낸 시 감상일 듯. 이만하면 시 감상이 여느 평론가 못지않습니다. 다 좋은데 이 글에 시인의 의도와는 다른 부분이 있어서 군말을 쓰기로 했습니다.

   둘째 연에 대해서입니다. 초보 연애, 십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첫사랑을 쓰고 싶었습니다. 대부분 십대에 열병 앓듯 지나게 되는 첫사랑을 불행히도 스스로 경험하지 못하는 이들도 간혹 있는 걸로 압니다. 삼십대, 사십대까지도 ‘사랑’을 모르는 문맹들이라고나 할까요. 더러는 그 부모들의 과잉보호로 인해서 부모에 의존해서 살아온 이들은 ‘사랑’의 대상도 부모가 직접 구해주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사랑’을 느끼지도, 그 대상을 발견하지도 못하는 딱한 삼사십대 남자들.

   시인의 의도는 비록 그러하지만 엉뚱하게 나이 든 아저씨와 십대 사이에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원조교제를 떠올릴 수도 있었겠군요. 그런 ‘오독의 자유’ 또한 독자의 것이므로 시인이 나서서 하나하나 독자들에게 따라다니며 구구히 설명하는 건 난센스일 것입니다.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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