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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원융무애한 삶의 보법 / 홍일표

by 솔 체 2015. 9. 25.

원융무애한 삶의 보법 / 홍일표

 

눈2

 

   김규성

  

 

 

양지에서는

살짝 어루만지기만 해도 금세 울어버리는 저 순한 것이

 

어쩌면 응달에서는

그리 사나운 빙판으로 변할까

 

나는 아내를 너무 오래 응달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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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맛은 모두 다릅니다. 설렁탕 시, 자장면 시, 탕수육 시, 국밥 시, 스테이크 시, 햄버거 시, 스파게티 시 등 다양하지요. 그런데 일부 평론가들은 편식이 심한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만을 최고의 음식인 양 거론하지요. 맛도 제대로 모르는 독자들은 평론가들의 한 마디에 우르르 몰려가 덩달아 맛있다고 설레발을 칩니다. 특히 대형 출판사를 등에 업고 있는 평론가들은 유형, 무형의 암묵적 요구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렇게 하여 그릇된 전범이 조작되고, 메뉴판에는 주요 요리만 올라가게 됩니다. 결국 자장면 시나 국밥 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갈수록 시인들의 정서적 위화감은 심화되지요. 비평의 사각에 있는 다수의 시들은 거론조차 되지 못하고 변방에서 쓸쓸히 잊혀지게 되는 것이 우리 시단의 현실입니다.

   김규성 시인의 「눈2」라는 시가 있습니다. 맵고 짠 첨단의 시에 익숙한 독자들은 맛이 좀 싱겁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시는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일군 작품들입니다. 천연의 재료들이 사용되었지만 독한 혀에는 무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순연한 서정의 향기와 맛이 있습니다.

   3연으로 된「눈2」는 편하게 읽으면 됩니다. 신경 곤두세우고, 눈 껌벅거리면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겨울에 쌓인 눈은 양지와 음지에서 그 모습이 다릅니다. 양지에서는 손끝만 대도 쉽게 녹아버리지만 음지에 쌓인 눈은 사나운 빙판이 됩니다. 화자는 ‘나는 아내를 너무 오래 응달에 두었다’고 말합니다. 이 한 마디 속에 아내에 대한 속 깊은 정과 애틋한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첫 시집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라는 제목과 가장 가깝게 핏줄로 이어진 시가 바로 이 작품이지요.

   김규성 시인은 우리말의 묘미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특히 그의 산문을 읽다보면 고유어를 부리는 절묘한 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지요. 또한 그의 시와 산문에서는 넓고 따뜻한 가슴과 원융무애한 삶의 보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이고 그 사람에게서 시가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규성 시인은 시와 삶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담양의 만덕산처럼 언제나 넉넉하고 허허하지요. 「기억」이라는 시에서 그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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