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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강형철의 「이슬비 이용법」감상 / 손택수

by 솔 체 2015. 9. 28.

강형철의 「이슬비 이용법」감상 / 손택수

 

이슬비 이용법

 

   강형철(1955~)

 

 

남대문시장 쌓여진 택배 물건 사이

일회용 면도기로 영감님 면도를 하네

비누도 없이 이슬비 맞으며

 

잇몸 쪽에 힘을 주며

얼굴에 길을 만드네

오토바이 백미러가 환해지도록

 

리어카의 물건들

비 젖어 기다리네

영감님 꽃미남 될 때까지

 

가로수는 누가 볼까 팔을 벌리고

사람들은 우산 쓰고 찰박찰박 걸어가는데

불탄 남대문 오랜만에 크게 웃고

 

 

                                   —《실천문학》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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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래시장에 비가 내리면 을씨년스럽다. 비설거지를 하는 상인들의 표정도 흐리고, 그런 상인들을 보며 지나치는 행인들도 우울하긴 마찬가지. 그런데 이 낙천적인 노인을 보라. 일당 노동자로 보이는 노인은 오늘 장사 망쳤다고 하늘을 원망하는 대신 이슬비 거품으로 면도를 하고 있다.

   비누도 없이 하는 면도라 상처가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데 더 잘 보이라고 오토바이 백미러가 환해지고, 이왕 젖었으니 어쩌겠느냐며 리어카의 물건들도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고된 노역에 지친 영감님을 꽃미남으로 만든 이슬비이니 불타버린 남대문이라고 어찌 웃지 않을까. 이슬비에 까만 그을음이 조금은 씻겨나갔겠다.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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