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의 「이슬비 이용법」감상 / 손택수
이슬비 이용법
강형철(1955~)
남대문시장 쌓여진 택배 물건 사이
일회용 면도기로 영감님 면도를 하네
비누도 없이 이슬비 맞으며
잇몸 쪽에 힘을 주며
얼굴에 길을 만드네
오토바이 백미러가 환해지도록
리어카의 물건들
비 젖어 기다리네
영감님 꽃미남 될 때까지
가로수는 누가 볼까 팔을 벌리고
사람들은 우산 쓰고 찰박찰박 걸어가는데
불탄 남대문 오랜만에 크게 웃고
—《실천문학》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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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 비가 내리면 을씨년스럽다. 비설거지를 하는 상인들의 표정도 흐리고, 그런 상인들을 보며 지나치는 행인들도 우울하긴 마찬가지. 그런데 이 낙천적인 노인을 보라. 일당 노동자로 보이는 노인은 오늘 장사 망쳤다고 하늘을 원망하는 대신 이슬비 거품으로 면도를 하고 있다.
비누도 없이 하는 면도라 상처가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데 더 잘 보이라고 오토바이 백미러가 환해지고, 이왕 젖었으니 어쩌겠느냐며 리어카의 물건들도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고된 노역에 지친 영감님을 꽃미남으로 만든 이슬비이니 불타버린 남대문이라고 어찌 웃지 않을까. 이슬비에 까만 그을음이 조금은 씻겨나갔겠다.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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