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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배영옥의 「벽돌 한 장」감상 / 손택수

by 솔 체 2015. 9. 30.

배영옥의 「벽돌 한 장」감상 / 손택수

 

벽돌 한 장

 

   배영옥

 

 

유모차 안에 갓난아기도 아니고

착착 쌓은 폐지꾸러미도 아닌,

벽돌 한 장 달랑 태우시고 가는 할머니

 

제 한 몸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무게가

벽돌 한 장의 무게라는 걸까

 

붉은 벽돌 한 장이

할머니를 겨우 지탱하고 있다

 

느릿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저쪽으로 옮겨다니는 유모차 할머니

 

너무 가벼운 생은 뒤로 벌렁 넘어질 수 있다

한평생 남은 것이라곤 벽돌 한 장밖에 없다는 듯이

 

허리 한 번 펴고 더 굽어지는 할머니

 

벽돌 한 장이 할머니를 고이고이 모셔 간다

 

 

————

배영옥(1966~) 1999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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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차는 짐을 나르는 수레도 되고, 허리 무릎 아픈 할머니들의 물리치료용 보행기도 되고, 나 같은 짓궂은 사람을 만나면 시위도구도 된다. 유모차까지 시위를 한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지만, 벽돌 한 장이 효도를 하는 세상이라니! 위태로운 한 걸음 한 걸음 무게중심을 잡아주며 할머니를 지키는 저 벽돌에게 효자 정려문(旌閭門)이라도 세워줘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오늘도 방방곡곡 유모차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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