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저글링」감상 / 김연수
저글링
서효인
두 개의 손목
세 개의 밀감
남쪽의 섬 같은
곡선을 따라 떠오르고 가라앉는
세계의 온갖 것들
섬과 해구, 화산과 현무암,
혀와 욕, 거북이와 모래,
하수구와 머리칼, 자궁과 후레자식
너랑 나,라고 말하면
이미 모든 것
단단한 밀감과 밀감
민감하게 벌어지는 입
회전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겁이 드나들었다
떨어뜨리는 것에 익숙해지면
으깨진 과일에 더이상 미련은 없다
미안의 마음이 머물지 않는 미욱한 발끝
볼 필요 없다 고개를 들고 오직 위를 봐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
허공을 돌아 손바닥으로 돌아오는
새벽의 알람시계
다음의 미안이 오기 전에 나는 이만 가야지
너랑 나랑은 만나면 곤란
여진과 마그마, 해녀와 죠스바
녹색당과 포경수술, 민물생선과 설치류
홍어와 싼티아고, 두 손과 두 발
서로를 밀며 완성하는 세계의 온갖 것
두려움 없는 중력의 사이사이
귤 셋
사이좋게 악수하며
저글, 저글 그리고 저글링
손목이 죽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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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에 사는 데이비드 리스라는 만화가가 연필을 깎아주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쓰던 연필을 보내주면 그는 손으로 연필을 깎은 뒤, 고객에게 다시 보내준다고 합니다. 그의 웹사이트를 보면, 제가 깎은 연필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가격은 12달러. 책 한 권 값이군요. 기자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 사람 왈, “작년 봄에 인구조사를 할 때 임시직으로 일했는데, 첫 날 다들 모여서 연필을 깎았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왜 이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지 의아스럽더군요.” 그래서 그는 몇 자루나 의뢰받았을까? 무려 100자루 넘게. 과연, 연필 깎는 일도 저글링처럼 온 마음을 쏟는다면, 세계의 균형을 잡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되는 모양이군요.
김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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