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의「등 뒤」감상 / 김기택
등 뒤
조 은
등 뒤가 서늘하다
뒤처져 걷는 네가
울고 있다!
파장이 느껴진다
들먹거리는 어깨가 느껴진다
눈물이 양식인 듯
입 속으로 자꾸 흘러들어간다
네 말은 끊길 데가 아닌 데서
끊어진다
너는 검은 웅덩이처럼
세상을 밖으로만 끌어안았다
내가 그 속을 보았다면
우린 벌써 끝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고르고
수면을 때리는 돌멩이처럼
기습하듯 뒤를 돌아본다
얼굴 가득
바위의 이음새 같은 주름이 접힌
너는 눈물을 감추려
얼른 등을 보인다
네 등 뒤도
서늘할 것이다
―웹진 《문장》2008년 9월호, 시집 『생의 빛살』
--------------------------------------------------------------------------------------------------
이렇게 슬픔이 잘 익은 시, 너무 잘 익어서 다디단 즙이 확 터져 나올 것 같은 시, 온몸으로 단맛이 핏줄을 따라 짜릿하게 스며들 것만 같은 시를 오랜만에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사방이 모두 막혀 있어서, 제 마음 말고는 숨 막히는 슬픔을 처리할 길이 없을 때, 소월 같은 시인은 슬픔을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키웠지요. 끝내 터뜨리지는 않고 터지기 직전까지 탱탱하게 키우기만 했지요. 감염력이 큰 그 자학적인 슬픔의 아름다움으로 현실의 고통을 즐기려고 했지요.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커다란 슬픔. ‘등 뒤’로 느껴도 그 격렬함이 온몸을 뒤흔드는 슬픔. 그것은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맑아지는 환희의 순간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김기택 〈시인〉
'문학 참고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체의 회복을 꿈꾸는 시 / 홍일표 (0) | 2015.12.05 |
---|---|
감각의 통로에서 바라본 시들 / 강 인 한 (0) | 2015.12.03 |
말이 되지 못한 글, 시가 되지 못한 말 (0) | 2015.11.17 |
서효인의 「저글링」감상 / 김연수 (0) | 2015.11.15 |
강인한의 「호주머니 속 악어」평설 / 우진용 (0) | 2015.11.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