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종의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감상 / 김기택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고재종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그 가지들이 가는
것이나 굵은 것이나 아예 실가지거나 우듬지거나, 모두
다 서로를 훼방놓는 법이 없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
한 허공을 끌어안고, 바르르 떨거나 사운거리거나 건들
대거나 휙휙 후리거나, 제 깜냥껏 한세상을 흔들거린다.
그 모든 것이 웬만해선 흔들림이 없는 한 집의
주춧기둥 같은 둥치에서 뻗어나간 게 새삼 신기한 일.
더더욱 그 실가지 하나에 앉은 조막만한 새의 무게가
둥치를 타고 내려가, 칠흑 땅 속의 그 중 깊이 뻗은 실뿌
리의 흙살에까지 미쳐, 그 무게를 견딜 힘을 다시 우듬지
에까지 올려보내는 땅심의 배려로, 산 가지는 어느 것 하
나라도 어떤 댓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당참을 보여주는가.
아, 우린 너무 감동을 모르고 살아왔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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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데, 이 감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잦고 바람이 강해도 오히려 가지들이 제멋대로 까불고 흔들리면서 바람과 함께 놀고 있네요. 연약한 실가지가 강한 댓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댓바람더러 더 세게 불라고 놀리면서 바람을 즐기고 있네요.
우듬지와 실뿌리 사이 ‘땅심’이 드나드는 이 놀랍고 자유로운 소통의 세계. 땅의 질서와 하늘의 조화가 한 그루 나무속에 완벽하게 집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를 축소시킨다면 바로 이 나무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실뿌리는 땅의 중심에 닿아 있고 우듬지는 하늘의 무한한 넓이로 뻗어 있는 세계. 그래서 이 세상 생명은 아무리 하찮은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두가 제 ‘깜냥껏’ 삶을 누리는 세계.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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