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감각의 영토 / 홍일표
거리의 식사
이민하
하나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펼 때는 마찬가지
굶은 적 없는 사람도 며칠을 굶은 사람도
먹는 건 마찬가지
우리는 하나의 우산을 펴고 거리로 달려간다
메뉴로 꽉 찬 식당에 모여
이를 악물고 한 끼를 씹는다
하나의 혀를 가진 사람도 세 개의 혀를 가진 사람도
식사가 끝나면 그만
그릇이 비면 조용히 입을 닥치고
솜털처럼 우는 안개비도 천둥을 토하는 소나기도
쿠키처럼 마르면 한 조각 소문
하나의 우산을 접고
한 켤레의 신발을 벗고
하나의 방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방을 가진 사람도
잠들 땐 마찬가지
냅킨처럼 놓인 침대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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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자는 이민하의 시를 ‘욕망의 죽음에 대한 인식’ 또 다른 평자는 ‘제7의 감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녀는 우리 시의
옹색한 공간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확장하였다. 아직도 시단의 일각에서는 구체성, 진정성 운운하며 눈앞의 현실만을 시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발 딛고 있는 현실만이 현실이라고 믿고, 다른 감각의 영토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려 든다. 또한 그들은 의미의 질서에만 길들여져 있어 감각적 이미지의 질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아예 이방인의 언어 취급을 한다. 그래서 젊은 시인들은 365일 외롭다.
이민하 시인은 사물을 왜곡하고 변형하여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기존의 상식과 논리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그녀의 시는 밝고 환하게 빛난다.「거리의 식사」는 비교적 편하게 읽히는 시다. 아주 빠른 속도로 심장을 관통한다.
7연으로 구성된 시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고 경쾌하다. 각 연마다 조건과 결과의 상호 관계를 말하면서 인간의 삶은 외부 조건과 무관하게 결국 동일한 현상으로 귀결된다는 내용을 묘사한다. 아울러 이 시는 ‘솜털처럼 우는 안개비도 천둥을 토하는 소나기도 / 쿠키처럼 마르면 한 조각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허무적 담론도 담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하나의 방을 가진 사람’이나 ‘세 개의 방을 가진 사람’이나 ‘냅킨처럼 놓인 침대 한 장’에 잠드는 것은 똑같다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거리의 식사」는 삶의 풍경이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으로 그려졌고, 작품의 이면에는 쓸쓸한 존재의 그늘이 어룽져 있는 중층 구조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같다. 삶의 방식과 유형은 다양하지만 종국에는 동일한 형식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누천년 이어온 인간의 변함없는 삶의 모양새다. 일종의 전략적 수사인 ‘냅킨처럼 놓인 침대 한 장’의 감각적 이미지가 신선하고 산뜻하면서도 한편 무겁고 망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민하 시인이 그 동안 독자 앞에 펼쳐놓은 존재의 풍경을 꼼꼼히 살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순식간에 제트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홍일표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한국시인협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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