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의 「원(圓)을 태우며」감상 / 김기택
원(圓)을 태우며
함민복
불타는 나무토막이
불꽃으로
푸르던 시절 제 모습을 그려 본다
불꽃으로
뿌리내렸던 산세를 떠올려 본다
살며 쪼였던 태양빛을 토하며
조밀한 음반
기억의 춤 나이테를 푼다
새의 날갯짓 활활
눈비바람 꺼내 불바람
흔들림에 대한 기억으로 흔들리며
불꽃은 타오른다
출렁출렁
빛 그림자
달빛도 풀린다
젖은 나무는
연기도 피워 보지만
원
탄
재가
가볍다
—시집 『말랑말랑한 힘』(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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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삶이 기록되어 있는 나이테는 불에 타면서 음반처럼 삶의 기억을 하나하나 재생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푸른 잎과 꽃의 기억을 연기에 담아 풀어버리고, 새소리와 달빛도 다 토해내고, 강렬한 햇빛과 독한 눈비바람도 계절에게 돌려줍니다.
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 다시 자식으로 이어지는 삶과 죽음의 순환과정이 ‘원’이죠. 자연에서 빌린 삶을 그 원에 담았다가 남김없이 되돌려주는 나무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활활 타는 통나무 곁에서 불을 쬐면서도 시인은 나무에 새겨진 그 '원'을 다비(茶毘)시키고 있었군요.
한 해가 저뭅니다. 묵은 나이테를 따라 돌고 있는 아픈 기억은 다 풀어버리고, 새해의 나이테에는 새로운 활력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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