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의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감상 / 손택수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기차에 관한 명상
정현종 (1939~)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기차는 떠나서 기차는 달린다.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달리는 기차 바퀴 소리의 그 꿈결이 이 기나긴 쇳덩어리를 가볍게 띄운다 — 꿈결 부상(浮上) 열차. 교행(交行) 때문에 서 있으면 근심도 서서 고이고 꿈꾸는 간이역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움직인다.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시집 『세상의 나무들』(1995) --------------------------------------------------------------------------------------------------
속도의 느림과 빠름으로 기차를 품평하려 들지 마라. 꿈결 부상 열차는 느림을 무작정 옹호하지도 않고, 빠름을 반성 없이 예찬하지도 않는다. 굼벵이보다 더 느릴 수도 있고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를 수도 있는 그는 그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처럼 자신의 리듬에 취해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꿈의 속도다. 꿈의 속도는 근심과 우울과 절망과 세상의 허다한 슬픔 속에 레일을 깔고 굴을 뚫고 또 간이역을 세운다. 이 열차의 승객들은 출발지와 목적지만 있는 여행 대신 그 사이에 있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다 간이역으로 삼을 줄 안다. 철커덕 철커덕 종무식이 끝나면 이 열차를 타고 어디 해 지는 바다라도 찾아가 봐야겠다.
손택수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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