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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공중」을 뼈울음으로 걷는 시인, 이영광 / 홍일표

by 솔 체 2017. 2. 21.

「공중」을 뼈울음으로 걷는 시인, 이영광 / 홍일표

 

공중

 

   이영광

 

 

나의 입술의 모든 말

벚꽃이, 다

졌다

 

벚꽃의 하늘은 포연 자욱했더랬는데

비늘처럼 새들이 떨어져 나오는

하늘에, 비수 같은 하늘에

찬란했던 나의 말들은 이제

없다

 

공중이 터널처럼 둥글게

헐어 있을 뿐

내 입술의 모든 빛,

모든 노래

웃음은

 

타오르고

폭발하고

날아갔다

 

대신(代身)에 불과한 검은 가지들이

손톱마다 쓰라린 알을 배어

공중이 되기 위해 공중을

뼈 울음으로 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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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덩이에 뿔난 일부 평론가들은 자크 라캉, 질 들뢰즈, 화이트 헤드, 에드문트 후설, 푸코, 데리다, 벤야민 등을 들먹이면서 어려운 전문 용어와 설익은 논리로 작품을 토막 내어 용케 통조림 강통에 집어넣기도 하지만 변죽만 울리다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마는 경우도 많지요. 주로 자기 입맛에 맞는 것들만 골라내고,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쉽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모험은 싫어하고 안전 제일주의를 선호합니다. 몇몇 용기 있고 눈 밝은 평론가들만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

   이영광의 「공중」을 보면서 평론가들의 글버릇을 잠깐 떠올렸습니다. 성큼 시 안으로 몸을 밀어 넣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꽃이 지고 찬란했던 말들이 사라졌습니다. ‘공중’은 터널처럼 둥글게 헐어 있고, 빛과 노래와 웃음은 다 날아갔습니다. 시의 첫머리를 상실과 좌절의 정조가 휩싸고 돕니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화자의 시선이 ‘검은 가지’로 옮겨갑니다. 여기서 검은 색은 겨울, 밤, 죽음, 휴식 등과 관련이 깊고, 동양철학적 관점으로 보면 물(水)을 상징합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 곧 모태이지요. 즉 새로운 생명, 봄, 낮을 예비하는 뿌리요 바탕입니다.

   ‘검은 가지’는 빛과 노래와 웃음을 대신하는 사물입니다. 꽃도 노래도 모두 소멸했지만 ‘쓰라린 알’을 발견하고 화자는 신생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뼈 울음’으로 공중을 건너야 하고, 상실과 좌절의 시간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설사 그 몸짓이 공중이 되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공중은 건너야 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말대로 눈앞의 잔은 비워야 되겠지요.

   한동안 죽음에 압도당했던 시인은 삶은 아무 것도 아니고 죽음이 본질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듯. 그러나 암투병 중이었던 후배 시인이 호전되는 걸 보고,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그 후 삶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지요. 이 시는 그러한 인식의 변화에서 빚어진 시입니다.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온 시인의 눈에 더 혹독한 ‘뼈 울음’이 기다리고 있지만 시인은 기꺼이 큰 발걸음을 내디딜 것입니다.

   문득 이성아의 슬프고 아름다운, ‘뼈울음’ 같은 소설 「저 바람 속 붉은 꽃잎」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다더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게 그랬어요. 이제 할만큼 하지 않았나요? 나도 이제는 가벼워지고 싶은데…. 이제는 나도 당신 곁으로 가고 싶어요. 그 생각 밖에 없어요. 당신, 거기 있나요?

 

홍일표

(문화저널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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