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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투어(鬪魚), 그 고통뿐인 사랑 / 강인한

by 솔 체 2017. 2. 26.

투어(鬪魚), 그 고통뿐인 사랑 / 강인한

 

 

 

  투어(鬪魚)

 

      이혜미

 

 

   빛나는 가시를 세우고 너에게 갈게.

 

   보고 듣는 것이 죄악이어서 무엇도 유예하지 못하고 부서져 완전해진 무늬가 되어 헤엄칠 때. 우리가 나눠 가진 입자들 일제히 진동한다. 지느러미를 펼치니 너와 나의 그믐.

 

   어쩌면 이렇게 단단하고 빛나는 것을 몸 안에 담가두었니.

 

   뼈, 거품 속에서 떠오른 얼굴. 그 얼굴은 심장에서 가장 먼 곳에 있어 네가 머물던 자리에 다른 비참이 들어선다. 서로를 흉내 내다가 서로에게 흉이 되는 순간. 늑골을 숨기고 촉수를 오래 어루만지면

 

   우리는 두 개의 날카로운 비늘. 아름다운 모서리가 남겨졌다.

 

   아직은 목젖을 붉게 적시며 구체적인 오후를 꿈꾸고, 잃어버린 세 번째 아가미를 찾아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깊이 고인 맹목도 헛된 문장만은 아닐 것

 

   그러니 함께 멀리로 가자.

   아름다울 몫이 남아 있다.

 

                                          — 『시안』 2010년 겨울호

 

 

   투어(鬪魚 betta fish, Siamese fighting fish)는 길게 뻗은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졌으며 성어(成.魚)가 되면 몸길이가 6센티미터 정도라 한다. 수컷끼리 만나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격렬하게 싸우는 물고기. 가시처럼 뻗친 수컷의 모든 지느러미는 매우 길며 몸 빛깔은 푸른색, 흰색, 노란색으로 아름답고 싸울 때는 입으로 물어뜯는다고 한다.

 

   한 편의 동화처럼 환상성이 강한 시. 투어라는 물고기들 그 암놈 수놈이 이 시 속의 이야기 주인공들이다.

   나는 지금 혼자이다. 나는 너에게 헤엄쳐 갈 것이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금지되고 마침내 죄악시되건만 나는 너에게 갈게. 너와 내가 마주보고 헤엄칠 때 물속의 모든 입자가 물살을 일으키며 진동한다. 완전한 물살 무늬를 짓는 우리 둘의 지느러미. 활짝 펼친 지느러미를 움직여 우리는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하게 우리들만의 그믐밤을 만들자.

   내 몸이 너를 느끼고 네 몸이 또한 나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가시 돋친 지느러미는 말고 부드러운 촉수로 서로의 몸 비늘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러나 날카로운 비늘, 서로에게 상처를 낼 수 있는 사나운 모서리를 지니고 사는 게 우리들의 숙명이다.

   너와 나의 사랑을 향한 열망은 목젖(아가미)을 붉게 적시고 우리는 꿈꾸지. 우리가 엮어갈 평화롭고 행복한 오후를. 우리 둘이 새롭게 만들어 갈 새로운 제3의 세계를 찾아간다는 것. 그 맹목적인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달뜨게 하며 아름다울 것인지, 그 먼 곳으로 우리 함께 가자. 사랑하는 이여.

 

   요즘의 다수의 젊은 시인들이 추구하는 자폐적이며 공소한 모호성, 불필요한 난해성 등과 시인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점이 바로 이 시인의 미덕일 터. 시인은 이 작품에서 알레고리의 표현 기법으로 충분히 시의 정체를 감싸고 치장하여 나름대로 환상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고 본다.

   “아름다울 몫이 남아 있다.”라는 마지막 행은 곱새겨 봐도 어눌한 진술. 그냥 “아름다운 몫이 남아 있다.”라고 해도 ‘미래에 찾아지는 몫’이라는 의미로 파악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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