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의 「움직이는 정원」감상 / 이진명
움직이는 정원
박상수
딸기를 반으로 쪼개 햇볕에 잘 말려두었다가 꿀에 섞어 눈꺼풀에 바르면 네 잎 클로버를 머리에 얹은 요정을 만날 수 있다 요정이 권하는 사루비아 술을 마시고 뒤뜰로 돌아가면 먹구름을 가져다 불을 때는 아궁이, 내려다보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다 움직이다 실패하고 호마이카 책상에 엎드려 잠든 나, 자는 동안 영혼이 지구 네 바퀴를 돌고 산등성이에서 하품을 할 때까지 날은 저물지 않는다 플라스틱 물조리개 물을 뿌리다 이끼 푹신한 우물 곁에 눕는다 잠에서 잠으로 이어지는 정원의 양철 굴뚝에서 타고 남은 구름이 팽글 클로버 이파리로 떨어져내리고 마을과 지붕을 건너 정원이 움직이는 곳마다 바삭바삭 잘 구운 딸기와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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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서문학》으로 시 등단. 2004년 《현대문학》으로 평론 등단.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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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로서는 새로운 미성년의 목소리. 미성년의 공상, 퇴행적 이미지들. 이런 기화(氣化)의 언어군(群)의 탄생에서 성인 삶의 무거움과 상처를 읽을 수 있다. 소년소녀 세계의 투명한 감수성을 꺼내 현실 삶의 먹구름과 실패의 쓰라림에 응전하는 것. ‘먹구름을 가져다 불을 때는 아궁이, 내려다보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다 움직이다 실패하고 호마이카 책상에 엎드려 잠든 나’. 의미의 덧칠 없는 영혼의 정원.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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