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종의 웃음과 시, 최금진의 「웃는 사람들」 / 홍일표
웃는 사람들
최금진
웃음은 활력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장치되어 있다가
폭발물처럼 불시에 터진다
웃음은 무섭다
자신만만하고 거리낌 없는
남자다운 웃음은 배워두면 좋지만
아무리 따라 해도 쉽게 안 되는 것
열성인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웃음은 어딘가 일그러져
영락없이 잡종인 게 들통난다
계층 재생산, 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얼굴에 그려져 있는 어색한 웃음은 보나마나
가난한 아버지와 불행한 어머니의 교배로 만들어진 것
자신의 표정을 능가하는 어떤 표정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웃다가 제풀에 지쳤을 때 문득 느껴지는 허기처럼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갖지 않는 웃음은 배가 고프다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들을 뚝뚝 떼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낯짝에 공평하게 붙여주면 안될까
술만 먹으면 취해서 울던 뻐드렁니
가난한 아버지의 더러운 입 냄새와 땀 냄새와
꼭 어린애 같은 부끄러움을 코에 귀에 달아주면
누구나 행복할까
대책 없이 거리에서 크게 웃는 사람들이 있다
어깨동무를 하고 넥타이를 매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웃음들이 있다
그런 웃음은 너무 폭력적이다, 함께 밥도 먹고 싶지 않다
계통이 훌륭한 웃음일수록,
말없이 고개 숙이고 달그락달그락 숟가락질만 해야 하는
깨진 알전구의 저녁식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참고 견디려 해도
웃음엔 민주주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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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끄집어내어 개성적인 상상력으로 공감의 폭을 확장시켜나가는 시인입니다. 현실과 본질 사이의 모순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하는 특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단순한 현실 재현적 시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지요.
현실의 문제를 개성적인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최금진의 시에 웃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웃지 않는 사람과 웃는 사람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웃어도 웃음이 어색한 사람과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는 사람의 차이를 최금진은 사회적 관점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갖지 않은 웃음은 배가 고프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불공평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만을 지적한 것은 아닙니다. ‘대책 없이 거리에서 크게 웃는 사람들’의 웃음은 너무 폭력적이라며 ‘함께 밥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계통이 훌륭한 웃음’에 대한 적대감마저 느껴지는 대목이지요. 그 감정의 기저에는 ‘말없이 고개 숙이고 달그락달그락 숟가락질해야 하는 / 깨진 알전구의 저녁 식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깨진 알전구’는 소외 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는 가진 자들의 무관심과 오만을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참고 견디려 해도 / 웃음엔 민주주의가 없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마지막 두 행이 독자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무거운 비애가 가슴 한쪽을 뭉근하게 짓눌러옵니다. 이것이 시의 힘이겠지요.
지상의 모든 중생들이 골고루 나눠 갖는 웃음, 서산의 마애삼존불 같은, 신라 와당의 깨어진 미소 같은 그런 웃음이 그리운 때입니다.
홍일표
(문화저널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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