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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이문재의 「소금창고」감상 / 이진명

by 솔 체 2017. 3. 13.

이문재의 「소금창고」감상 / 이진명

 

 

소금창고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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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1959년 경기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 현재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경희사이버대 문창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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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지는 서쪽 바다 멀리 끝 간 데 모를 하얀 소금밭에 기우는 까만 소금창고 하나. 내가 담으려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속에 담겨 묵어 있는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 그런 풍경을 배경으로 고적해져 있는 한 사람의 추억을 듣는다.

   요즘 세상 마흔 살이면 청년일진대, 이 마흔 살 주인공은 천성이 늙수그레한지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주며 지금은 없어진 소금창고가 있던 곳의 헐한 옛 시간을 추억한다. 시린 옛날 노래는 사라져가는 게 아니라 지금도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라고 목메며.

   덧없이 가고 오는 흰구름 속, 어느 구름의 시간에 자기를 걸었는가 묻고 싶은 한 방울 눈물 떨어지는 마흔 살.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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