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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김경미의 「야채사(野菜史」감상 / 이진명

by 솔 체 2017. 5. 12.

김경미의 「야채사(野菜史」감상 / 이진명

 

 

야채사(野菜史)

 

   김경미 (1959~ )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 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 나왔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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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작품들에서 종종 ‘이름 없는 들꽃’이 피어 있다느니 ‘이름 없는 풀’이 흔들린다느니 하는 구절 만날 때 있다. 이름 없는 꽃, 풀이란 없다. 이들은 다 제 이름, 학명이 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미처 알고 있지 못할 뿐. ‘이름 없는 들꽃’이라고 말하면 어쩐지 시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본데 이런 전혀 시이지 않은 심리적 오류를 걷고, ‘야채사’에 나오는 먹을 수 있어 확실한 채소들 이름을 부르자. 애초에 꽃이었으나 잎, 줄기, 뿌리 모두 영양 있고 맛 달아 인간 몸을 지탱하는 식용이 된 고구마, 감자, 가지, 호박, 양파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우리도 이 야채사처럼 처음엔 서로의 꽃이었다가 유독 달아서 채소가 된 것. 그러니 애초 우리 하나의 꽃이었던 사랑 밀어내지 말고, 멀리 왔다고 모른다 하지 말자.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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