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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심보선의 「아내의 마술」감상 / 이진명

by 솔 체 2017. 5. 9.

심보선의 「아내의 마술」감상 / 이진명

 

 

아내의 마술

 

   심보선 (1970~ )

 

 

아내가 슬프고

슬픈 아내를 보고 있는 내가 슬프고

그때 온 장모님 전화 받으며, 그러엄 우린 잘 지내지, 하는

아내 속의 아내는 더 슬프다

마술처럼 완벽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모자에서 나온 토끼가

모자 속으로 자청해서 돌아간다

내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 하면

딱딱한 면은 왜 나를 막는가

엄마가 아이를 버리고

직업이 아비를 버리고

병이 아픈 자를 버리고

마술사도 결국 토끼를 버리고

매정한 집이, 너 나가, 하며 문밖에 길을 쏟아버리자

미망(迷妄)이 그 길을 받아 품에 한번 꼭 안았다가 바로 버린다

온 세상을 슬픔으로 물들게 하려고

우는 아내가 식탁 모서리를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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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상한 생활 속 아내, 남편 사이에 일어난 어떤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는 화자 나는 근본적으로 존재를 슬퍼하는 자인 것 같다. 아내가 슬퍼하고, 그런 아내의 불화를 보는 내가 슬프고 하는 일은 완벽한 세상에 살고 싶어 하는 우리의 꿈을 막는 딱딱한 면의 하나가 된다. 마술 같은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 하면 거울의 딱딱한 면이 나를 막았듯이 막히는 세상.

   우는 아내의 슬픔은 빈 마술모자에서 토끼가 튀어나와 신기했듯, 슬픔에 반응하는 나까지도 포함하여 처음 보는 신기한 마술이 된다. 본래 있어 우리가 응당 보아야 했지만 가려 두었던 슬픔이 꺼내진 마술.

   벼리어진 지성과 때 타지 않은 언어로 색다른 감성을 부리는 시인의 재능 엿볼 수 있다.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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