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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성윤석의 「지상에서 2」감상 / 박후기

by 솔 체 2017. 5. 3.

성윤석의 「지상에서 2」감상 / 박후기

 

 

지상에서 2

 

   성윤석

 

 

앞만 보고 갔다네

언제나 공사 중, 공사 중인 이 세상

맨홀에 빠질 뻔했다네

어두컴컴해서 배후가 보이지 않는 맨홀

우리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네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집과 집을 잇는 송수관이 보였다네

그래도 나는 걷는다네

도처에 있을 맨홀

그래서 더 우리가 다치지 않는지도

모른다네 동굴 같고 다락 같고

요나의 고래 뱃속 같고

한번 멋모르고 빠지면 깊게

들어가 온몸이 망가지는 심연 같고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맨홀이

있을까 없을까 생각하며 산다네

한 번씩 뚜껑을 열고 세상을 쳐다보는

맨홀 내 심연은 어디로 갔나

여기에서 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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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맨홀 위에서 살고 있다. 세상은 구멍투성이,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복개천 위일 수도 있고, 정화조 위 일수도 있으며, 하수관이나 지하도 위일 수도 있다.

   ‘멋모르고 빠지면 깊게 / 들어가 온몸이 망가지는 심연’을 삶이라고 하자, 죽음이라고 하자, 이 지구라고 하자. 우주에서 보면 지구도 하나의 작은 구멍, 우리도 지구처럼 발을 헛디딘 것일 뿐.

   성윤석 시인, 그가 서울시립묘지 관리인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공원묘지, 그 뚜껑뿐인 심연의 비탈 위에서.

박후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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