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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는 비
좋 은 시 와 글

강윤후 / 옛 골목에서

by 솔 체 2017. 7. 25.

옛 골목에서

강윤후



햇빛이 흐르는 대로 길이 트인다

나는 술래라도 된 듯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어린 날의 기억들은 꼭꼭 숨어 버려

머리카락조차 들키지 않고

블록 담벼락은 글자가 씻겨 나간 필사본 같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가 이 골목을 지나갔을까

내 오래된 수첩도 젖고 마르기를 거듭하여

막다른 기억들로 얼룩져 있다

지워진 글자를 판독하듯

담벼락에 손바닥을 얹고 걷는다

차단된 세월의 저편에서 다른

손바닥이 담벼락을 쓸며 지나간다

나는 누군가와 손바닥을 맞댄 채 걷는다고

상상해 본다 문득 햇빛이 흐름을 멈춘다

모르는 글자들이 손바닥을 통해

몸 안 가득 주입된다

나를 따르던 그림자가

내게서 손을 떼고

저 혼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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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후 62년 서울 출생, 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다시 쓸쓸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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