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육체에는 벌레가 산다
박주택
트럭 행상에게 오징어 10 마리를 사서
내장을 빼내 다듬었다, 빼낸 내장을 복도의 쓰레기 봉투에
담아 한켠에 치워 두었다, 이튿날 여름빛이
침묵하는 봉투 속으로 들어가 핏기 없는 육체와 섞이는 동안
오징어 내장들은 냄새로 항거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장마가 져 나는 지붕 위에 망각을 내리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헛된 녹음에 방문을 걸고 있을 때
살 썩는 냄새만이 문틈을 타고 스며들고 있었다
복도에는 고약한 냄새만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방 안 가득 풍겨오는 냄새를 맡으며 냄새에도 어떤 갈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더 정확히는 더러운 쓰레기를 힘겹게 내다
버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과 싸우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복도의 문을 열었다
비가 멎고, 싸우고 난 뒤의 불안한 평온이
사방에 퍼져 있었다, 공기가 젖은 어깨를 말리고 있었다
발자국에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막 열쇠로 문을 잠그고 돌아설 때쯤
핏기 없는 냄새가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무덤에서 냄새의 뿌리로 태어난 수많은 구더기들이
시간의 육체 속으로 흩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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