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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시 화 1

[스크랩] 연엽에게 / 송수권

by 솔 체 2014. 5. 29.


    연엽에게
    
                     詩 / 송수권   낭송 : 전향미 
    * 다시 시를 쓰면 손가락을 자르겠다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연(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 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하여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을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 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까치마늘 같던 발아!
    연(蓮) 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연(蓮) 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
     
            녹음 파일: 바람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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