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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이제니의 「독일 사탕 개미」감상 / 권혁웅

by 솔 체 2017. 12. 17.

이제니의 「독일 사탕 개미」감상 / 권혁웅

 

 





독일 사탕 개미   

 


  이제니(1972~ )

 

 





독일 사탕을 먹는 독일 사탕 개미

꿈속에선 이열 횡대로 사열하는 꼬마 병정들

입마다 사탕 하나씩 굴리고 녹고 굴리고 녹고

독일 사탕과 독일 사탕 사이

꼬마 병정과 꼬마 병정 사이

내 목구멍과 네 목구멍 사이

끝없이 멀어지는 독일 사탕 개미

머리에 식빵 조각을 이고 독일 사탕 개미

독일 사탕은 독일에서 왔나요

여전히 머리에 식빵 조각을 이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떠나고 싶었어요

독일 사탕이 있는 독일이라면 더 좋겠죠

독일 사탕은 울고 독일 사탕은 달콤하고

독일 사탕은 진홍빛 독일 사탕은 너무 쉽게 녹아요

내 취미는 일요신문의 십자말풀이 빙고게임

내 유일한 추억은 푹신한 이불 위에 앉아

너와 함께 식빵 부스러기를 나눠먹던 일

여전히 머리에 식빵 조각을 이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떠나고 싶었어요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어디든

여전히 머리에 식빵 조각을 이고

창백한 청백의 에나멜 구두를 신고

독일 사탕 독일 사탕 돌림노래를 부르며

독일 사탕을 먹는 독일 사탕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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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다 흘린 사탕과 식빵 부스러기에 개미가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입마다 사탕 하나씩 굴리고” “머리에 식빵 조각을 이고” 둥지로 돌아가는 길이 일사불란이다. 무슨 독일 병정들 같구나. 내 꿈은 일요일 오후의 한가로운 한때, 너와 식빵을 뜯으면서 ‘십자말풀이’ 게임이나 하는 것이었다. 이 꿈의 한때에 “돌림노래를 부르며” 꼬마 병정들이 출현했다.

   자, 그러면 떠나볼까. “아프니까”가 “아프리카”가 되고, “솜사탕”이 “분홍 설탕 코끼리”가 되는 이제니 식 원더랜드로. 호프만과 차이콥스키에게 호두까기인형이 있다면 이 시인에게는 독일 꼬마 병정이 있다. 이열 횡대로 꿈을 실어 나르는 조그만 친구들이 있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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